시인의 말을 읽다가 왜 시인이 이런 말을 하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검색을 해보니 시인이 병으로 고생을 했다고 한다.


  그랬구나, 그래서 이런 말이 나왔구나. 병으로 고생을 한 것이 이 시집에 영향을 주기도 했겠구나 하는 생각.


 '서른살 무렵,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 카프카가 죽은 나이까지는 살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런데 하느님은 내 소원을 잘못 알아들으신 것 같다. 카프카가 쓴 것처럼 쓸 수 있을 때까지 살게 해달라는 이야기로. 그리하여 나는 그 누구보다 오래 살고, 어쩌면 영원히 살게 될지도 모른다.'('시인의 말'에서. 114쪽) 


  하아, 이렇게 해서 또 카프카를 만나는구나. 시집에 실린 시 중에 '단식하는 광대'라는 시가 있는데, 이 제목을 보는 순간, 카프카의 '단식 광대'가 떠올랐으니... 


카프카가 쓴 것처럼 쓸 수 있을 때까지라는 말, 카프카 작품은 대부분 미완성이다. 과정이다. 그러니 시인은 영원히 살게 될지 모른다고 했는지도. 이는 자신의 작품을 딱 떨어지게 완결하는 것이 아니라 열려 있는 상태로 놓아두겠다는 것.


시인은 고정된 무언가를 사람들에게 전달하지 않고 사람들과 함께 미정형을 정형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고 싶다는 바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시집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현실에 마음 아파하는 시들도 꽤 있으니, 현실을 생각하면서 읽어도 좋다. 그러다 이 시 '어떤 보병'을 읽으며 시인의 모습이 바로 이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으니...


  어떤 보병


글자들의 사막을 지나

도시들의 시궁창을 지나

별과 얼음 녹은 진창길을 지나


  여름

    가을


너덜거리고 찢어진 마음의 끝단이

어느 검고 부드러운 가죽 장화 속으로

몰래 

기어들어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벗기 싫어

밤새 알지 못하는 어느 주홍빛 막사 앞에서

나는 보초를 섰습니다


흠뻑 젖은 외투 위로

가벼운 밤눈이 또다시 내리고 있습니다


진은영, 훔쳐가는 노래, 창비. 특별한정판 1쇄. 2023년. 57쪽.


시인은 이렇게 보초를 서는 존재. 너덜거리고 찢어진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그것과 함께 하는 존재. 그러한 존재인 시인은 세상을 가장 낮은 곳에서 본다. 더 이상 낮출 수 없는 곳까지 자신의 눈을 낮춰 이제 그 눈으로 세상을 본다.


하여 시인의 눈은 높고 크고 아름다운 것들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낮고 작고 아름답다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존재들도 본다. 그 존재들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모두가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훔쳐가지 못하게 지키는 보초가 된다. 자신은 흠뻑 젖을지라도...


이 시를 읽고 'Bucket List -시인 김남주가 김진숙에게'를 읽으면, 마음 한 켠이 아려온다. 가장 낮은 곳에서 보는 눈을 가진 시인이 높은 곳에 올라 있는 김진숙을 본다. 그 거리를 메울 수 있다면, 시인은 기꺼이 그를 지키는 보초가 되리라. 그래서 시인 김남주를 통해 김진숙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고.


많은 시들이 가슴에 와닿았는데... 좋다. 시인의 건강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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