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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 대소동 - 묫자리 사수 궐기 대회
가키야 미우 지음, 김양희 옮김 / 문예춘추사 / 2024년 9월
평점 :
죽어서까지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자 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 아닌가 싶다. 그냥 사라지지 않고 무덤을 만들어 자신의 후대들이 계속 찾아오기를 바라고 있으니. 아마도 지구에 있는 모든 생물이 인간처럼 무덤을 남기를 바랐다면, 지금쯤 지구는 온통 무덤으로 뒤덮여 있으리라. 그만큼 사라져야 할 존재가 사라지지 않으면 문제가 남는다. 인간들의 무덤이 그렇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묫자리는 대부분은 땅에 매장하는 방식으로 하는 무덤이었다. 무덤의 가장 대표적인 예로 현충원이 있지 않은가. 서울에 있는 현충원만으로 부족해서 대전에도 있고, 또 다른 지방에도 그와 비슷한 묘역이 조성되어 있으니.
국가유공자라고 하는 사람들을 모신 묘역만 해도 지금 포화 상태인데, 여기에 개인 묫자리까지 하면 더더욱 남아날 땅이 없게 된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였을 터. 물론 이 소설에 나타난 묫자리 소동은 땅의 문제가 아니라 돌봐줄 후손이 없다는 문제지만.
소설은 일본을 배경으로 한다. 며느리 역할과 시어머니 역할을 하던 사람이 죽으면서 딸에게 유언으로 가족묘에는 절대로 들어가지 않겠다고, 수목장을 해달라고 하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며느리라면 가족묘에 묻히는 것이 당연시하던 일본에서 자신만의 곳으로 가겠다니, 남은 남편은 충격이다. 여기에 가족묘를 돌봐야 하는 자식들도 그러한 문제에 대해서 서로 의견이 나뉜다. 그렇다고 일본 역시 저출생으로 또는 성을 바꾼 문제로 가족묘에 들어갈 사람은 정해져 있다. 한 명 아니면 많아야 두 명 정도. 그나마 손자(녀) 대에 가면 그것마저 끊길 처지다.
이러니 가족묘에 대한 문제를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소설은 그 점을 경쾌하게 이끌어간다. 심각한 가족 갈등을 무겁지 않게 이끌어가고 있다. 며느리의 입장, 시아버지의 입장, 그리고 아들과 그 자식들의 입장에 서서 각자 자신들이 어떤 관점을 지니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더해서 일본의 성씨 문화. 결혼을 하면 주로 남편 성을 따르는 일본의 관습을 문제 삼고 있다. 왜 결혼을 하면 자신의 성을 버려야 하는가? 세상에 성을 바꾸는 나라가 얼마나 되지? 우리나라는 자신의 성을 지니고 가기 때문에 별 문제가 되지 않는데, 일본은 성이 바뀐다고 한다. 성을 바꾼다는 것, 그냥 단순히 성만 바뀌는 것이 아니다. 관계 자체가 바뀌는 것이다.
이 관계에서 저 관계로 옮겨가는 것. 그것을 공식화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성이 바뀌는 문제다. 그런데 왜 남자 쪽 성으로만? 여자 쪽 성으로 바꿀 수도 있지 않나? 소설은 그렇게 자신의 성을 지키려 하는 손녀들을 중심에 놓는다.
적어도 남녀가 평등한 사회라면 성을 선택할 자유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나라는 고정된 성이긴 하지만 자녀에 따라서는 부모 중 한 성을 선택하거나 (예전 가부장제에서 무조건 남자 쪽 성을 따르던 것에서 벗어나고 있는 중), 부모 둘의 성을 모두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선택권이 법적으로 완전히 보장되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쪽으로 가고 있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성을 선택하는 것과 묫자리 문제는 다른 것 같지만 같은 문제를 지니고 있다. 개인보다는 친족을 우선시 하는 사회의 모습. 개인과 개인이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관계 속에 개인을 위치시키는 것이다.
살아서는 성이라는 관계, 죽어서는 묫자리라는 관계. 그러니 이 소설 [파묘 대소동]은 그러한 관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한다. 성이라는 요소에는 가부장 사회라는 모습, 여기에 누군가는 종속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관계가 만들어진다는 점이 들어 있고, 묫자리에는 소설에서도 지나가는 말로 나오지만 남자 자기 부모의 무덤인데도 돌보는 일은 주로 며느리들이 하는 것, 또 며느리는 자신의 본가로 가지 못하고 시가의 묫자리로 가는 것 등등을 통해 여성을 대등한 존재로 인정하지 않았던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니 이 소설은 파묘와 성(姓)이라는 요소를 가지고 현대 일본 사회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무거운 주제임에도 결코 무겁지 않게, 그리고 나름대로 현대에 맞게 즉 바람직한 방향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제행무상이 결코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충실히 살라는 말이라는 것을 이 소설에 나오는 주지 스님을 통해서 보여주며, 남성들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들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최근에 일본에서 부부 별성 문제를 합법화하는 법안을 낸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 소설에서 성(姓)에 대한 결정권은 어느 정도 부여되었지만, 한 성으로 반드시 바꾸어야만 부부로 인정이 되는 관습은 바뀌지 않았다. 이제 그것도 바꾸려고 한다고 한다. 소설에서도 부부 별성을 반대하는 정치인이 야유를 받고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방식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여전히 일본은 부부 별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니...
참... 이 소설, 그런 점에서 성(姓)과 묘지를 연결지어 생각하게 하는,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