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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독일의 과거청산과 기억문화
알렉산더 렌너.최광준 지음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22년 12월
평점 :
독일은 과거산을 잘한 나라라고 한다. 나치의 학살을 사과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여러 제도들을 마련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 기억할 수 있는 문화를 지니고 있다. 기억문화라는 말을 쓴다는 것 자체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과거산이 제대로 되었는가? 되었다는 대답을 하기가 힘들다. 여전히 친일파들에 대한 논란이 있는 것을 보면. 하긴 어떤 학자는 (아니 기관장인가? 학자라고 하기엔 좀~) 일제시대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적이 일본인 일본인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그렇다면 나치 치하의 비시 정부 프랑스인들은 국적이 독일인인가? 지나친 비약이긴 하지만. 미국 식민지였던 필리핀인들은 국적이 미국이었고?
이 정도로 과거산이 안 되어 있으니, 기억문화라는 말도 생소할 수밖에 없다. 기억문화는 무언가가 정리가 되고 그것을 사회 차원에서 기억하는 문화가 확립되었을 때 쓰는 말 아닌가. 친일파 문제조차도 제대로 해결이 되지 않고 있는데, 무슨 기억문화?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았으니, 일본과 얽혀 있는 군위안부 문제는 말할 것도 없다. (군위안부라는 말을 쓰지 말고 성노예라는 말을 쓰자고 한다. 그것이 더 정확한 용어라고. 용어 문제가 해결되어야 과거산, 기억문화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
자발적 매춘이라고 하는 자들도 있으니, 과거 청산은 요원하기만 하다. 이런 상태에서 기억문화라니, 가당치도 않다. 기억문화가 확립되기 위해선 과거 청산이, 진실규명이 확실하게 되어야 한다. 그것이 전제조건이다.
이 책은 독일과 우리나라의 교류를 기념하여 독일 사람들과 우리나라 사람들이 서로의 연구 성과를 발표하고 토론한 것을 정리했다. 토론 내용은 이 책에 실리지 않았고 발표 내용만 실렸는데... 그 중에 참고할 만한 내용들이 꽤 있다. 특히 '기억문화'라는 말.
그렇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지 않은가. 기억문화라는 말은 바로 그것이다. 자신들을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디딤돌. 그것이 바로 기억문화다. 그런데 기억문화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과거 청산이 이루어져야 하고,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
그렇다면 기억문화를 확립하기 위해 과거의 사건들을 정리해야 한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많은 사건들을 철저히 조사해서 진실을 밝혀야 한다. 우리나라에도 그러한 일을 하는 위원회가 있다. 여전히 많은 것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곳에서 많은 진실을 밝혀내기도 했으니, 기억문화를 확립하는 데 한발 나아갔다고 할 수 있다.
먼 과거만이 아니라, 2000년대 들어와서도 밝혀지지 않은 일들이 있다. 이러한 일들이 철저하게 밝혀져야 한다. 그리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권력을 지닌 가해자의 책임을 묻는 일, 그러한 가해자가 책임을 지고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일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이 책에서 5.18민주화운동을 다루는 것도, 평화의 소녀상 문제를 다루는 것도 그래서이다.
아직 가해자들이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다면 가해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인도에 반한 죄'를 철저히 적용하는 일이다.
과거 청산과 기억문화. 독일 역시 완전하다고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었고, 우리나라 역시 미흡하기는 하지만 그런 쪽으로 나아가려고 하고 있다는 것, 그것을 시민들이 더 잘 인식하고 함께할 때 진정한 '기억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해준 책이다. 다만, 학술적인 내용이라 내용이 많이 건조하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