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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재원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1월
평점 :
짧은 소설이 실려 있다. 소설이라고 하기보단 작가의 에세이라고 하는 글도 있고. 그렇지만 작가와 작품을 꼭 일치시킬 필요는 없으니, 그런 작품도 그냥 소설로 읽자. (물론 옮긴이의 말에서는 두 편의 에세이-171쪽-를 포함시켰다고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에세이를 소설집에 싣는다면 맨 뒤로 뺐으면 좋았을 것을, 원래 판본이 그렇지 않았다는 얘기로 받아들이고)
첫작품부터 충격을 준다. '신앙'이다. 신념보다 더 종교적인 쪽으로 나아간 마음 상태. 신앙에는 옳고 그름의 잣대를 대기가 힘들다. 아무리 객관적인 증거를 들이대어도 신앙을 지키는 사람들에겐 증거가 소용이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신앙과 신앙이 아닌 것을 어떻게 구분할까? 이를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로 생각을 바꾸면, 내가 알고 믿고 있는 것이 진실일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소설 속 인물도 마찬가지다. 자신은 '속는 재능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어(43쪽)'라고 이야기하지만, 이미 속고 있는데, 자신만은 안 속고 있다고 여기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런 상태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이다.
사이비 종교로 돈을 벌겠다고 하는 것을 비웃지만, 무엇이 사이비인가? 사이비를 판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비싼 물건을 사면서 만족하면서 사는 것과 자신만의 믿음을 지니고 사는 것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아니 자신은 하나하나 원가를 따지면서 소비한다고 하는 것이 과연 진실된 삶일까? 그것이 현실에 발붙인 삶일까를 생각하게 한다.
삶은 그만큼 이렇다라고 하나로 정의하기 힘들다. 삶 속에는 다양한 진실들이 있으니 말이다. 그런 모습을 두 번째 실린 '생존'이란 소설에서 알 수 있다. 다양함을 잃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떤지... 생존율을 계산해서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
내 눈 앞에 생존율이 떡하니 보이는데, 어떻게 생존율을 높이려 하지 않을까? 그러나 모두가 생존율을 높이려고 하면 그 생존율은 변하지 않는다. 상대적인 비율이 그대로 존속하기 때문에... 어쩌면 상대평가로 앞만 보고 달리는 우리나라 수험생들의 모습이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 단지 대학에 가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평생을 그렇게 생존율에 목숨 걸고 살아야 하는 사회라면, 그런 사회를 거부할 수는 없을까?
거부할 수도 있겠지. 거부를 통해 자신만의 삶을 찾아갈 수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사회에서 '야생'이 될 수밖에 없다. '야생'이란 소설에서 '난 야생으로 돌아갈 거야.(86쪽)'라고 외치는 인물에게서 그런 점을 발견한다. 그냥 예측불가능한 삶으로 자신을 끌고 가는 것. 어쩌면 우리 삶은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정해져 있지 않기에 자신의 삶을 자신이 만들어 갈 수 있다는 데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정해져 있지 않은 것, 그것이 바로 예술이고, 예술은 사람을 사람으로서 존재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전시회'라는 소설이 그렇다. 바로 예술에 관한 이야기다.
'이것에 눈을 뜨면 마음을 지배당하고 말아요. ... 지금까지와는 다른 자신이 되고 맙니다(165쪽)'라고 전시회를 여는 사람을 죽이러 온 존재는 말한다. 즉, 다양한 사고를 억압하는 사회에서는 예술은 존재해서는 안 된다. 지배는 '균일' 속에서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함이 존재하는 사회는 견딜 수 없는 사회가 된다. '컬쳐쇼크'라는 소설을 보면 그 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런 소설들을 통해 작가는 하나로 사람들을 몰아가는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균일'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양념 식으로 '다양성'을 외치지만 이 '다양성'은 '균일'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인정된다. 또 다양성을 '균일'을 유지하기 위한 놀잇감으로 삼기도 한다.
'기분 좋음이라는 죄'에서 그 점이 잘 드러나고 있다. 내성적인 작가의 모습. 그래서 학교 생활이 힘들었던 모습. '그들의 혹성에 돌아가는 일'이라는 글에도 그런 모습이 잘 드러나고 있는데,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당할 것을 두려워하는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이것은 '다름이나 다양성'이 '균일'의 틀 안에서만 인정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하는데... 우리 사회 역시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개성을 발휘해야 한다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개성이나 다양성은 사회적 용인의 틀 안에서, 즉 정해진 범주 안에 있어야만 인정하고 있지 않나. 이 틀을 벗어났을 때는 가차 없는 비판과 배제가 따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다시 첫소설 '신앙'으로 돌아간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신앙'을 지니고 있는지도, 그 '신앙' 때문에 다른 것을 보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지닌 '신앙'을 볼 수 있을 때, 그때서야 '신앙'은 '균일'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짧은 소설들, 경쾌한 문장들, 그리고 참신한 발상, 재미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들을 우리에게 전해준 소설집이다. 다른 작품들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그런 소설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