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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밤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우석균 옮김, 알베르토 모랄레스 아후벨 그림 / 열린책들 / 2010년 2월
평점 :
'칠레'하면 떠오르는 작가는? 파블로 네루다. 그렇다. 네루다만큼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작가가 있을까 싶다. 칠레 작가가 네루다만 있는 것은 아니고, 여성 작가로 이사벨 아옌데가 있기도 하지만, 영화 '일 포스티노'로도 네루다가 알려져 있고,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라는 소설로도 알려지고,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로도 유명한 사람이 바로 네루다다.
이 소설에서도 네루다가 나온다. 네루다가 나오니, 칠레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작가가 주인공일 거라는 생각을 하기 쉽다. 나 역시도 소설의 주인공이 네루다를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니, 당연히 그는 독재국가가 된 칠레 사회를 비판적으로 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처음부터 이상하다.
'나는 지금 죽어가고 있건만 아직도 하고픈 말이 너무도 많다. 내 자신과는 평화롭게 지냈는데. 그저 묵묵히 평화를 누렸건만,. 그런데 느닷없이 이 일 저 일 떠올랐다. 그놈의 늙다리 청년 탓이다.' (9쪽)
격동의 나라, 독재의 나라였던 칠레. 그런 엄혹한 시절을 거쳐왔는데, 그것도 작가로서, 비평가로서 명성을 얻으며 살아왔는데, '묵묵히 평화를 누렸'다고 한다. 묵묵히, 이는 사회 문제에 입을 닫았다는 말이다. 눈을 감았다고 해야 한다. 보고도 말을 하지 않으면 적어도 '평화를 누렸'다는 말을 할 수는 없을 테니.
이런 작가가 서술자로 소설을 이끌어 간다. 그래서 이 처음 문장으로 인해 서술자는 믿음을 주지 못한다. 아옌데 정권이 쿠테타로 무너졌을 때 서술자는 '참 평화롭군'(99쪽)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쿠테타가 일어나 많은 사람이 죽고 독재정권이 들어섰는데, 대통령은 대통령궁을 사수하려고 최후까지 싸우다 죽었는데, '평화롭군'이라니, '정말 조용하군'(99쪽)이라니... 이런 사람이 문학을 한다고? 이런 그가 어떻게 네루다를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볼 수가 있지?
소설의 초반부에 네루다가 등장하는 것은, 네루다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문학인을 등장시켜서 그를 비판하고자 하는 의도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당시 칠레의 모습이기도 하겠고.
이런 칠레의 모습은 서술자가 피노체트를 위시한 군부를 위해 마르크스 사상을 강의하는 장면으로 이어지고 (도대체 이 작자는 무슨 생각인 거지? 이렇게 문학과 세상이 동떨어질 수도 있나?), 문학인을 위해 파티를 여는 마리아 카날레스라는 사람에게서 절정에 이른다.
이 사람의 남편은 반체제 인사들을 고문하는 정보국 사람이고, 그는 그러한 고문을 자신의 집에서 한다. 집 한 쪽에서는 고문이, 다른 한 쪽에서는 문학을 빙자한 파티가 벌어지는 사회, 그것이 정상적인 사회인가. 그러한 것들이 우연히 알려졌음에도 사람들은 독재정권 하에서 그 파티에 계속 참여한다. 그것을 드러내거나 비판하는 사람들은 없다. 이런 문학인들의 모습을 볼라뇨는 이 소설에서 통렬하게 보여주고 있다.
쿠테타로 집권한 독재 정권. 그런 사회가 행복할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없음에도 행복한 것처럼 꾸미며 사는 사람들. 겉으로 치장하는 예술가들. 그런 예술가들의 모습을 이 소설을 통해 비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런 칠레의 모습을 '유다의 나무'로 비유하고 있다. '유다의 나무를 흥얼거리면서 가다가 칠레 전체가 유다의 나무로 변해 버렸다는 깨달음을 얻었다'(143쪽)라고 하는데, 깨달음을 얻었다면 어떤 행동을 해야할까?
유다의 나무가 무엇을 의미할까? 예수를 배반한 유다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목을 걸고 죽은 나무가 '유다의 나무'라고 한다면, 서술자가 칠레가 유다의 나무라고 하는 것은 자신들의 잘못을 깨달았다는 것일까?
아니면 칠레 전체가 유다의 나무이니, 자신들의 잘못을 칠레가 나중에라도 단죄한다는 뜻인가? 그래서 늙다리 청년을 등장시켜서 자신이 살아온 삶이 잘못 산 삶이었음을 생각하게 하는 것인가?
모골이 송연하다는 표현을 하고 싶을 정도로 시대와 사회에 눈 감은 문학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들이 어떻게 그러한 문학 활동을 하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칠레에서만이 아니라 우리나라도 이러한 때가 있었으니, 이 소설에 등장하는 서술자와 같은 역할을 한 문학인이 우리에게도 있었으니...
진정 문학을 하는 사람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이러한 질문은 시대를 막론하고 늘 해야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리나라는 이러한 예술가들보다 현실을 바로보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최근에도 당당하게 자신들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낸 작가가 있었으니, 우리나라 이런 작가들은 이 작품에 나오는 서술자와는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예술가들이 있다는 것, 자랑스러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