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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사람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평점 :
죽어가는 많은 사람 중에 내가 선택하지 못하고 지정해준 단 한 사람만 살릴 수 있다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전혀 고려할 수 없고 그냥 구해야만 한다면? 그 사람을 구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죽어가고 있다면? 그 사람의 심정은 어떨까?
우선 많은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또 한 사람이라도 구했다는 안도감, 아니면 내가 구할 사람을 선택하지 못했다는 무력감. 어떤 마음이 들까?
이래도 저래도 마음은 확실히 편치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살린 사람보다는 살리지 못한 사람이 많고, 살린 사람들이 모두 괜찮은(?) 사람이라는 보장이 없으니까. 단적으로 소설에서는 폭력범을 살리기도 하고, 사기꾼을 살리기도 한다. 정작 자신이 살리고 싶은 사람은 살릴 수 없으면서도.
내가 선택하지 못하고 누군가, 그것도 단 한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이 축복일까, 재앙일까? 여기에 대한 세 사람의 반응이 나온다. 아니 어쩌면 네 사람이라고 해야겠다. 나중에 목화의 조카인 루나 역시 사람을 살리는 일에 참여하게 되니까.
임천자의 단 한 명은 기적.
장미수의 단 한 명은 겨우.
신목화의 단 한 명은, 단 한 사람.
한 사람을 살리는 일이었다. (233쪽)
소설은 오 남매로부터 시작한다. 아니, 나무로부터 시작한다. 나무, 하늘과 땅을 잇는, 또는 하늘과 인간을 잇는 신목(神木)으로 일컬어지지 않았던가. 두 나무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서로 다르게 자란 두 나무는 뿌리를 연결해 결국 한 나무가 된다. 사람들이 베어버렸을지라도.
이 이야기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려준다. 나무는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한다. 단 한 사람만을. 그것을 기적으로 받아들이는 할머니 임천자. 겨우 단 한 명을 살린다는 것에 좌절하는 엄마 장미수, 그리고 왜 자신이 사람을 살리는지 이유를 알려고 하는 신목화. 나중에 신목화는 단 한 사람이지만 그것은 전부인 한 사람임을 깨닫는다.
어떤 사람이건 생명은 소중한 것. 그는 이 세상에 유일한 존재인 것. 그러므로 사람을 살리는 일에 어떤 가치를 동반할 필요는 없다. 생명의 무게는 누구에게나 똑같기 때문이다. 이 점을 알려주기 위해 작가는 이 가족의 셋째인 금화의 죽음을(? 명확하게 죽었다고는 나오지 않지만, 나중에 목화와 목수가 나무를 만들어 바다로 보내려는 것은, 금화의 죽음을 인정하고, 금화를 보내준다는 의미를 지닌다) 설정한다.
자기 목숨을 대신 가져가라고 할 정도로 소중했던 사람을 살리지 못하지만, 단 한 사람, 바로 세상의 전부인 그 사람을 살리는 일을 인정하게 되는 목화. 그렇다. 우리가 누구를 살릴지 결정할 수 있다면 과연 그 세상이 행복한 세상이 될까?
아닐 것이다. 선택할 수 없기에 누구의 생명이든 소중하다는 것, 그 자체로 온전한 하나의 생명임을 명심해야 한다. 삼대에 걸쳐 단 한 사람을 살리는 일에 참여하게 되는, 조카인 루나까지 하면 4대에 걸쳐 단 한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사람들 이야기.
이들 4대에 걸친 사람들만이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단 한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소설은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죽을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살아 있을 수도 있음을, 그래서 우리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겨야 함을 인식하게 한다. 바로 내가 그들이 살려낸 단 한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
소설 속에 수많은 죽음이 나온다. 전혀 예기치 못한 죽음부터 예상하고 받아들이는 죽음까지 다양한 죽음들. 그러나 죽음은 삶이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한다. 어쩌면 삶과 죽음은 두 나무의 뿌리가 하나로 엮이듯이 하나일지도 모른다. 단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서 그렇지.
삶과 죽음에서 단 한 사람을 삶의 길로 가게 만드는 것이 비극일 수 없다. 사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살릴 수는 없다.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삶의 길은 자신이 걸어가야 한다. 삶의 길을 자신이 찾아야 한다. 자신이 찾을 수 있도록 다시 기회를 주는 일. 그것은 단 한 사람에게도 벅찬 일이다.
그 벅찬 일을 하는 사람. 그래서 더욱 괴로워하는 사람. 더 많은 생명을 살리지 못했다는 자책. 살리는 사람을 선택할 수 없다는 무력감. 하지만 선택할 수 있다면 더한 죄책감에 시달릴 수도 있다. 자신의 감정때문에 다른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는. 따라서 단 한 사람을 구하는 일에도 무작위가 작동해야 한다. 구하고 그것으로 끝내야 한다. 삶의 길을 보여준 것으로... 그 길을 가는 것은 그 사람의 몫이다. 거기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자.
세상은 온갖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들이 어울려 살아가고 있으니까. 물론 좋은 사람만 있으면 좋겠지만, 그게 어디 그런가. 삶과 죽음이 공존하듯이 옳음과 그름도 공존하고, 선과 악도 공존하는 것이 세상이다. 다만, 우리는 삶에 더 중점을 두듯이 옳음과 선 쪽에 더 강조점을 두고, 그렇게 살아가고자 할 뿐이다.
단 한 사람만 살릴 수 있다는 가정.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삶이란 무엇인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혹시 아는가? 우리 역시 어느 순간 죽음에 직면했음에도 누군가의 도움으로 살아남았을지. 우리가 그 단 한 사람일지. 그렇다면 삶의 길에 들어선 우리는 내 삶의 길에서 죽음의 길로 들어선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내 삶은 나만의 삶이 아니다. 단 한 사람을 살렸지만, 그 단 한 사람의 생명에는 수많은 죽음이 함께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