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 권여선 장편소설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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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고생이 두부 손상으로 죽었다.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소설은 이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세 명의 서술자가 등장한다. 죽은 여고생의 동생인 다언, 다언과 같은 동아리 소속이자 죽은 여고생과 같은 반이었던 상희, 그리고 역시 같은 반이었던 태림.


서술자는' 다언-상희-다언-태림-다언-태림-상희-다언' 순으로 나온다. 사건의 전모는 태림이 서술자로 나와 상담사에게 전하는 말을 통해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상희가 서술자로 나오는 부분에서 다언의 모습은 달라져 있는데, 한번은 아직도 상처에서 허덕이고 있는 모습이고, 한번은 어떤 식이든 상처에서 나온 모습이다. 그러니, 상희의 서술을 통해서 다언이 자기 나름대로의 해법을 실행했다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러면 다언이 서술자로 나오는 부분은? 언니의 죽음을 충격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할 수렁 속에서 헤매던 다언이 서서히 복수를 다짐한다. 언제까지 그냥 무기력하게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고. 그때 다언은 계란 노른자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노란 천사의 복수가 시작되었다. 레몬,이라고 나는 의미 없이 중얼거렸다. 복수의 주문처럼 레몬, 레몬, 레몬이라고.' (97쪽)


언니가 마지막으로 입었던 옷은 노란색, 계란 노른자도 노란색, 그리고 레몬 역시 노란색. 노란색이라는 것이 서로를 연상시키고 있다. 언니가 입었던 노란색 옷은 죽음의 옷이고, 잊고 싶은 색깔이었다면, 달걀 노른자의 노란색은 그 사건을 상기시키면서 이젠 행동해야 할 때라는 것을, 자신을 추스리고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리는 색깔이라면 레몬의 노란색은 무엇인가. 


레몬의 신맛, 인생의 신맛. 이런 것을 생각하게 하는가. 자, 나는 이제껏 인생의 힘듦을 겪었다. 이젠 너희 차례다. 이런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아니면 신맛으로 인해 긴장을 잃지 않고 자신을 행동으로 이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하여간 레몬이 주문처럼 등장하고...


이제 서술자들의 서술을 통해서 또다른 사건을 짐작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다언의 복수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여기에 매개가 되는 인물이 한만우라는 인물이다. 한만우라는 이름 때문에 붙은 별명이 소설의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민요의 '한 많은 이 세상'을 하안만우우'(11쪽)이라고 부른다는 서술이 그렇다.


평온한 세상이 아니라 한 많은 세상인데, 그런 세상살이를 하는 인물이 바로 한만우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간다. 자신의 처지에서 최선을 다해서. 그것이 바로 인생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하여 다언은 이런 생각을 한다.


'혹시라도 살아 있다는 것, 희열과 공포가 교차하고 평온과 위험이 뒤섞이는 생명 속에 있다는 것, 그것 자체가 의미일 수는 없을까.'(198쪽)

'찰나에 불과한 그 순간순간들이 삶의 의미일 수는 없을까'(199쪽)


결국 세상은 평온하지 않지만, 그것이 바로 인생이고 삶의 의미라는 생각. 자신에게 닥친 일을 직접 대면하겠다는 의지이지 않나 싶다.


명확하게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지는 않고, 또다른 사건도 묻힌 듯이 보이지만 두 사건 사이에는 연관성이 있다. 읽으면서 그 점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작가가 서술하고 있는데...


이런 사건들을 통해서 우리는 삶에 드리운 어둠의 그림자들 역시 우리 삶이라는 생각. 그리고 그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고 있다. 좋은 면을 보여주지 않고 뜻하지 않게 우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들이닥친 문제들이 우리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다언의 서술에 나타난 한만우 가족의 삶을 통해서 다시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하고 있다.


지금 이렇게 소설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이 순간이 바로 삶의 의미일 수도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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