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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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된 소설에서 '빛'을 생각한다. 그냥 빛이 아니라 희미한 빛이다.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하나는 너무도 멀고 작아서 희미하게 보이는 빛, 또 하나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 이제는 희미해져버린 빛. 둘 다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현재 그 빛은 내게서 멀어져 버렸다는 의미로 다가오기도 한다.


최은영 소설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 실린 일곱 편의 소설들을 하나로 관통하는 주제가 바로 이러한 '희미한 빛'이 아닌가 한다. 제목이 된 소설은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라서 빛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겠지만, '몫, 일 년, 답신, 파종, 이모에게,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에서는 이러한 빛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마지막 소설인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에서는 빛을 연상할 수도 있겠다. 빛은 사라지기도 하지만 우리 마음 속에서 사라지지도 않으니 말이다.


왜 서로 다른 매체에 발표된 단편소설들에서 공통점을 발견했을까? 그것은 이 소설들에서 '빛'이 '볕'이 되는 순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내 눈 앞에 보이는 빛이 볕이 되어 내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준 순간이 있었음을, 이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 모두에서 느낄 수 있었기 때문. 소설들에 나온 어떤 인물들에게서 이러한 빛을 볼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에서 말하는 빛은 결코 화려하지 않다. 크지도 않다. 위대한 빛, 누구나를 다 비추는 그러한 빛이 아니다. 희미한 빛이다. 내게 다가온, 나를 이끌어준, 그래서 어둠에서도 내가 포기하지 않게 해준 빛이다. 나를 이끌어준 빛이라서 개인적인, 사소한 빛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우리네 삶이 그렇지 않은가. 


우리 삶은 모두 개인적이다. 개개인의 삶들이 모여 사회를 이룬다. 그렇기에 개인의 삶은 개인에게서만 그치지 않는다. 세상에 전적으로 개인적인 것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내가 겪는 기쁨, 고통도 다 사회와 관련이 되어 있다. 즉 나를 이끈 희미한 빛은 이 사회 속에서 온전하게 나를 살아가게 하는 존재가 된다. 이는 사회가 어두울 때 더욱 나를 이끌어준다. 어둠 속에 묻혀 좌절하지 않고 나아가게 하는 빛. 그 빛은 희미한 빛일지라도 나를 포기하게 하지 않는다. 계속 가게 한다.


그리고 그런 희미한 빛으로 인해 우리는 사회 속에서 보이지 않던 존재들을 깨닫게 된다. 보이지 않는 억압을 발견하게 되고, 그런 억압 속에서도 묵묵히 자기 길을 가는 존재들을 만나게 된다. 그런 존재들로 인해 사회가 조금씩 발전해 왔음을. 개인이 어둠 속에서도 버틸 수 있었음을.


이런 빛은 볕이다. 온기를 지니고 있는. 단지 밝음만이 아니라 온기를 지니고 있는 따스함이다. 이 따스함은 나를 감싸준다. 따스함에 감싸인 나, 남을 감쌀 수 있다. 그렇게 빛이 볕이 되는 순간, 세상은 조금 더 따스해진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댈 수 있게 된다. 기댈 수 있는 존재가 한때라도 있었다는 사실. 그것이 고통스러운 삶을 버틸 수 있게 해준다.


그 과정이 결코 녹록치 않음은 물론이지만,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따스함과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 나를 이끌뿐만 아니라 포근하게 감싸주는 존재들이 우리 삶에 있었음을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한다.


그러면서 나는 누군가에게 희미한 빛이 되어준 적이 있었던가? 누군가에게 따스한 볕이 되어준 적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을 한다. 아직까지 그러한 존재가 되어준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고... 소설을 통해 다짐을 한다.


굳이 드러낼 필요가 없다. 소설 속 인물들 중에 자신을 강하게 드러내면서 빛이 되고자 하는 존재는 없다.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남에게 곁을 내어주는 존재였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존재들이 마음에 남아 계속 볕의 온기를 지속시킨다.


여전히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또 그러한 사람들에게 빛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있고, 빛이 볕이 되어 온기를 전달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곁을 내어주는 사람들이 이는 한 세상은 어둠으로만 차 있지는 않게 된다.


최은영의 소설을 읽으면서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라도 빛나는 빛들, 앞을 보게 만들어주는 빛을 생각했고, 그 빛들이 우리에게 전달에 주는 별의 온기를 생각했다.


세상은 차갑고 어두운데, 최은영의 소설은 차가움 속에 따스함을, 어두움 속에 밝음을 지니고 있다. 짧지만 이러한 빛과 볕의 역할을 잘 보여주는 소설이 '파종'이라는 소설에 나온 '삼촌' -소설 속 화자에게는 오빠-이 아닌가 한다. 곁에 있어주면서 삶의 자세를 보여준 존재. 바로 이 존재에게서 빛과 볕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다른 소설들에서도 이런 역할을 하는 존재를 만나게 되지만.


소설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 실린 소설들을 읽으면서 이렇게 빛과 볕의 역할을 하는 인물이 누구일까 찾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지니게 되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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