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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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짧은 소설이 이렇게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다니... [맡겨진 소녀]도 그랬지만 이번 소설은 더한 울림을 준다. 아, 아, 아~ 무엇일까? 무엇이 자꾸 소설을 생각하게 할까?


우리 삶이 사소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 사소한 것들을 신경쓰지 않고 살아온 것도 사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것들이 모이고 모여 알게 모르게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그것이 앞으로의 내 삶의 방향을 이끌 수도 있다는 것을 소설을 통해서 깨닫게 된다.


사람들이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끼고, 그 속에서 살아간다는 사실. 그것을 자신은 깨닫지 못하더라도. 또한 가까이에 있는 자신의 행복을 유지해주고 있는 사소한 것들을 잘 모르고 지낸다는 것. 


그러다 어느 한 순간 행복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은 자신의 작은 행복에 더 연연하게 된다. 그것마저 잃지 않기 위해서. 그래서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 소설의 주인공은 펄롱처럼 '모든 걸 다 잃는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는 걸 펄롱은 알았다.' (22쪽)고 하기 때문이다. 잃지 않기 위해서 눈을 가린다. 귀를 막는다. 입을 다문다. 그것이 자신의 행복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소시민의 삶. 소시민의 행복은 그렇다. 하지만 정말 그런 삶이 행복할까?


수녀원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게 된 펄롱에게는 그것을 무시하고 가족과의 행복에 안주하느냐 아니면 수녀원 또는 수도원과 척을 지게 되더라도 자신이 행하고자 하는 것을 행하느냐의 갈림길에 선다. 이때 펄롱은 자신을 돌봐주었던 미시즈 윌슨과 네드를 생각하고, 자신의 엄마를 떠올린다. 미혼모였던 엄마를 수녀원에 갇힌 세라에게서 발견하게 된다. 그런 엄마를 받아들여줬던 미시즈 윌슨과 자신을 키워줬던 네드를...


그래서 그는 결국 수녀원에서 세라를 데리고 나온다. 다음에 어떻게 할지는 나중 일이다. 그때 세라를 데리고 나오면서 그가 한 생각이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아이를 데리고 걸으면서 펄롱은 얼마나 몸이 가볍고 당당한 느낌이던지.' (119쪽)


자, 마음은 가벼워졌다. 비록 그의 앞길에 불행과 어려움이 밀어닥칠지라도, 그는 오히려 행복하다. 왜냐하면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 - 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 지금부터 마주하게 될 고통은 어떤 것이든 지금 옆에 있는 이 아이가 이미 겪은 것, 어쩌면 앞으로도 겪어야 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 펄롱은 순진한 마음으로 자기들은 어떻게든 해나가리라 기대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121쪽) 고 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말을 하기 위해서 짧은 소설 안에 펄롱의 어린 시절을, 그리고 지금 가족과 지내는 단란한 생활을 펼쳐보이고 있다. 그러한 소소한 행복이 펄롱으로 하여금 세라를 구하게끔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사소한 친절, 행복들이 모여서 지금의 그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120쪽) 


이렇게 깨달은 펄롱이 어려움에 처한 세라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그것은 자신의 삶과 반대되기  때문이다.


이제 그의 앞에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펄롱은 최악의 어려움을 건너갔기 때문에 견뎌낼 것이다. 자신을 이룬 사소한 것들의 행복을 배신할 수 없기에... 


아, 이렇게 자신을 구성하는 것이 사소한 것들이고, 그런 것들로 인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기에, 다른 사람의 불행을 무시할 수 없는 삶을 살게 된다. 왜냐하면 남들도 그러한 사소한 것들, 조그마한 친절이나 도움 등으로 행복한 삶을 추구할 수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짧은 소설이다. 제목은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지만 알고보면 이 사소한 것들이 바로 우리들의 삶을 만들어낸다. 우리들의 행복을 유지시켜주는 요소들이다. 그러니 사소한 것들을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눈, 귀, 입을 지녀야 한다. 무엇보다 그것들을 행복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소설은 끝장을 덮으면서 더 큰 울림으로 마음을 울린다. 결코 사소하지 않은 울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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