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한국을 말하다
장강명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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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현재 한국 사회의 모습을 소설로 표현하기 위해서. 아주 짧은 소설로. 4000자 안팎의 소설이라고 한다. 21명이 참여했는데도 두꺼운 소설집이 아닌 얇은 소설집이 되었으니, 각 작가가 쓴 분량이 어느 정도라고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량이 짧다고 내용도 짧은 것은 아니다. 짧은 형식 속에 긴 내용이 들어 있다. 우리 사회가 보이고 있는 모습들 중에 하나하나씩을 잡아 소설로 표현하고 있으니까.


지금 한국 사회가 보여주는 모습들이 어떨까? 아니 작가들은 어떤 모습을 포착했을까? 21개의 주제라고 할 수 있지만 첫작품은 소설집의 방향이나 내용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 주제는 20개라고 보면 된다.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AI에 대해서는, 이미 인공지능이 소설도 시도 쓰고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작가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화두가 되고 있는 요즘, 곽재식은 '제42회 문장 생성사 자격면허 시험'이라는 소설로 이를 해결하는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실행'하는 자격증을 인간에게만 주면 되는 일. 이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을 작가라고 하면 될 일. 즉 일은 인공지능이 하지만 열매는 인간이 먹어야 한다고 지금 현실을 조금 비틀고 있다.


구병모의 '상자를 열지 마세요' 역시 요즘 넘쳐나는 콘텐츠를 다루고 있다. 너무도 많은 콘텐츠들로 인해 우리는 사유를 하지 않는다. 사유 기능을 상실하는 인간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를 풍자하고 있는 소설이라고 보면 된다.


점점 가난해지는 삶을 비판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이서수의 '우리들의 방'은 절약이라는 이름은 사실 가난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음을 해학적인 표현을 통해 보여주고 있으며, 이기호의 '너희는 자라서'는 사교육이 판치는 우리나라 현실을, 김화진의 '빨강의 자서전'은 일에 치여 번아웃되는 사람들의 모습을, 조경란이 쓴 '금요일'은 가족을, 김영민의 '변기가 질주하오'는 현대적 삶과 예술을, 김멜라의 '마감 사냥꾼'은 고물가를, 정보라의 '낙인'은 타투를, 구효서의 '산도깨비'는 은퇴 후 자연에 돌아가 살고 싶어하는 자연인을 꿈꾸지만 그것이 꿈에 불과할 수도 있음을, 손원평의 '그 아이'는 현대판 소비를, 이경란의 '덕질 삼대'는 팬심을, 천선란의 '새벽 속'은 새벽 배송으로 힘들어하는 배달노동자들을, 백가흠의 '빈의 두 번째 설날'은 이주 노동자의 문제를, 정이현의 '남겨진 것'은 반려동물을, 정진영의 '가족끼리 왜 이래'는 섹스리스를 주제로 한다고 하지만 육아와 일에 치인 부부가 서로 사랑하면서도 멀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김혜진의 '사람의 일'은 노동을, 강화길의 '화원의 주인'은 마약이나 이런 중독만이 중독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자기 만족적인 중독이 있음을, 김동식의 '그분의 목숨을 구하다'는 돈을, 최진영의 '삶은 계란'은 식단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렇게 20개의 주제가 가볍게 펼쳐지는데, 읽으면서 마음은 절대로 가볍지 않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일이고, 우리 다음 세대들도 역시 겪을 일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집을 통해서 지금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으며, 그것들을 표현한 작품들을 통해 그 문제에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좋을지도 생각할 수 있다.


이 소설집에 실린 20개 주제에 들어가지 않지만 여기에 정치를 풍자하는 소설이 하나 정도 들어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우리 사회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주제가 바로 '정치'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적어도 [소설, 한국을 말하다]라고 했으면 정치를 다루는 풍자 소설 한 편은 실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래도 지금 한국 사회를 전체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해주는 소설집이다.


무겁지 않게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그러면서도 우리 사회 문제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그러한 소설집이니 한편한편 천천히 읽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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