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그리다 - 초상화가 정중원 에세이
정중원 지음 / 민음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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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화' 


예전에는 많이 그려졌다고 생각했다. 사진이 없었으므로. 사진이 나온 다음에는 초상화는 거의 없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보니 아니다. 여전히 초상화가 그려지고 있다. 사진으로서는 표현하기 힘든 그 무엇을 초상화가 찾아내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리라.


사진이 있는데 굳이 그림을? 그것도 요즘 사진이 얼마나 화소가 많아 화질이 뛰어난데...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데 사진만한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이 책을 읽으니 그것이 아니다. 


사진도 나를 온전히 드러내지 않는다. 어느 때 어느 각도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찍었느냐에 따라 내 얼굴이 달라진다고 하니 말이다. 특히 내가 찍은 사진과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 속의 나는 다를 수밖에 없다고 하니, 사진이 나를 똑같이 드러낸다고 할 수는 없다.


그림을 보면서 실물과 똑같다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칭찬이기보다는 창의성 없다는 말과 통할 때가 많다. 실물과 똑같을 수는 없지만 (이것은 이 책의 뒤에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에 대한 이야기와 하이퍼리얼리즘을 참조하면 된다. 무엇이 정말 '나'인지...) 화가들은 똑같이 그리려고 하지 않는다.


물론 조선시대 초상들을 보면 실물과 똑같이 그리려고 했다고 한다. 실물에 있는 점 하나도 빼먹지 않아야 했다고 하니... 하지만 그것은 그림의 주인공이 지니고 있는 단점을 가리지 않는다는 뜻이지 똑같이 그렸다는 말과는 다르다.


즉 인물을 있는 그대로 그려 그 사람을 꾸미지 않고 표현했다고 해야지 똑같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예전 초상들은 그런 그림을 통해서 사람이 지니고 있는 내면을 드러내려 했다고 읽은 적도 있으니...


이 작가도 마찬가지다. 초상을 그리되 똑같이 그릴 수는 없다고 한다. 의뢰인이 좋아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사람은 시시각각 변하기 나름이고, 또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의뢰를 맡아 그림을 그린 과정을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처음에 그가 한 실수들, 그 실수들을 바탕으로 더 나은, 적어도 의뢰인이 만족할 만한 초상을 그리게 된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초상은 똑같다를 떠나서 무엇을 드러내고 감추어야 하는지를 판단하고, 그런 판단에서 초상이 그려진다는 점을 잘 알려주고 있다.


또한 초상에는 사회의 모습도 담겨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는데... 우리나라 지폐 속 인물들의 그림에 대한 이야기, 또 표준 영정이라고 하는 세종대왕, 이순신, 율곡, 퇴계 등의 초상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를 돋운다.


세상에 표준 영정을 제정해서 다른 얼굴을 그리지 못하게 하다니... 아니 그릴 수도 있겠지. 다만 비난을 받게 되겠지만. 이는 획일화다. 다양성과 개성을 추구하는 예술과 거리가 먼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얼굴도 본 적이 없는, 당시에 그린 초상이 남아 있지도 않은 조상들의 얼굴을 표준으로, 딱 이거여야 한다고 정해서 다른 상상을 막다니, 그것은 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화폐에 들어가는 얼굴이야 나라에서 그렇게 정했다고 하면 그만이지만.


이밖에 다양한 초상화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서양부터 우리나라까지, 그리고 초상이 지니고 있는 의미와 최근 과학기술의 발달로 초상에도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까지를 살피고 있다.


그가 그린 초상화 그림도 볼 수 있어서 좋고, 많은 인물들의 초상화와 그 초상화에 얽힌 사연을 만나볼 수 있어서도 좋았다. 


이 책을 읽으니 사진 또 인공지능 시대라 해도 사람이 직접 자신의 관점, 마음을 담아 그리는 초상화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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