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건너기 소설의 첫 만남 30
천선란 지음, 리툰 그림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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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첫 만남' 시리즈의 한 권이다. SF작가라 할 수 있는 천선란이 썼다. 천선란 하면 따뜻한 소설이 떠오르니, 이 소설 역시 따스함을 전해줄 거라 생각하고 읽었다. 


읽기 전에 책 표지에 접힌 면을 보니, '동화에서 소설로 가는 징검다리'라고 한다. 이는 동화라고 하면 주로 어린이를 독자로 한 작품이라고 생각하고(최근에는 어른을 위한 동화가 있지만, 동화라는 말 자체에 아이 동(童)자가 들어 있으니) 어린이에서 청소년으로 가는 과정에서, 소설을 만나는 징검다리가 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더 깊은 독서를 위한 마중물'이라고 했으니, 징검다리, 마중물. 모두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니, 이 작품은 이 작품을 통해 또다른 작품으로 나아가게 한다고 할 수 있다.


또다른 작품을 만나게도 하지만, 그 말을 조금 더 확장하면 또다른 자신을 만나게 해준다는 의미도 될 수 있다. 즉 다른 나를 만나러 가게 하는 징검다리이자 (징검다리는 그냥 막 건너지 않는다. 사이 사이가 띄어져 있기에 조심해서 건너야 한다. 이 다리에서 저 다리로 건너갈 때 앞을 정확히 보고 정확한 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그러니 징검다리는 현재 자신이 딛고 있는 다리를 알아야 하고, 다음에 디딜 자리를 알아야만 한다. 이런 역할을 하는 작품이라는 의미로 해석하면 좋다) 다른 존재를 이끌어내는 마중물이 되는 것이 이 작품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어디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이고 무엇을 맞이하는 마중물인가? 당연히 지금보다 나은 나로 가는 징검다리이고, 지금보다 나은 나를 맞이하는 마중물이 되어야 한다. 어떻게?


그 '어떻게'의 역할을 각 작품이 하고 있겠지만, 이 작품은 '상처'를 이야기 한다. 살면서 상처를 받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는 평생 동안 마음에 남아 있는 경우가 있다. 


이 상처는 불쑥불쑥 튀어나와 자신을 괴롭히게 된다. 마주보고 싶지 않은 상처, 마음 깊숙한 곳에 묻어두고 결코 꺼내보고 싶지 않은 상처. 하지만 그렇다고 이 상처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예측하지 못한 때에 나와 나를 괴롭히게 된다.


상처가 징검다리나 마중물이 아니라 물귀신처럼 나를 잡아 나락으로 끌어내린다. 그것을 잊으면 잊으려 할수록.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주보아야 한다. 끌어안아야 한다. 상처는 상처니까, 없앨 수 없으니까. 없던 일로도 할 수 없으니까. 자신에게 상처가 있음을 인정하고, 그 상처를 보듬어야 한다.


소설은 그래서 아이 때로 간다. 거기서 아이를 만난다. 자신이 아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만나러 간다. 어른이 된 내가 아이가 된 나를 만난다. 그리고 아이인 나는 어른인 나가 자신임을 알아본다.


자,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어린 시절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존재를 만난다. 이 존재는 그때나 지금이나 나 자신보다 훨씬 크고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이미 나는 어른이 되어 있다. 이것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그냥 묻어두고 있었음을.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직면한 두려움. 아이가 만났던 두려움과 더욱 커진 두려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다. 돌아가서는 안 된다. 그냥 묻어두어서도 안 된다. 이제는 그것을 이겨내야 한다. 누가? 어른인 내가? 아니다. 아이와 어른인 내가 함께해야 한다.


함께 그 두려움을 이겨내는 일이 바로 어린 나를 보듬어주는 일이 된다. 상처를 보듬어주는 일이 된다. 그때서야 비로소 어른이 된다. 과거의 나와 결별한 내가 아니라, 과거의 나를 징검다리 삼고, 과거의 두려움을 마중물 삼아 다른 존재로 나아간 내가 된다.


짧은 소설에서 이렇게 '나'는 '어린 나'를 만나고 어린 나를 내 안에 받아들인 '어른'인 나가 된다. 그래서 따스하다. 상처가 있음을 알고도 따스할 수 있다.


이렇게 이 소설은 내용면에서도 그렇지만 이 작품을 통해서 다른 작품을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면 이 소설은 다른 작품으로 가는 징검다리이자 마중물이 된다. 그런 마중물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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