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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즘의 고통 - 우리는 왜 경쟁적인 사회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가
이졸데 카림 지음, 신동화 옮김 / 민음사 / 2024년 6월
평점 :
나르시즘을 자아 도취로 보지 않고, 자기 이상을 향한 추구로 본다. 그러면 우리는 모두 나르시스트가 된다. 자기 이상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없으므로.
하지만 자기 이상이 무엇일지, 자기 이상의 옳고 그름은 어떻게 판단할지가 문제가 된다. 자기 이상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준거가 외부에서 온다면, 그 외부에서 오는 준거는 무엇일까? 신이 있다면 모든 것이 한방에 해결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외부에서 오는 준거는 없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틀은 자신의 내부에서 와야 한다. 자신의 내부에서 온 틀을 가지고 자기 이상을 실현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면 자기 이상은 보편적일까? 사람이 저마다 개성이 있지만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이상이 있을 수 있는가? 있다면 그것을 보편성이라고 하겠지만, 사람은 누구나 다 다르고, 추구하는 이상도 다를 수밖에 없다.
하여 보편성을 제외하고 개별성에 적용되는 특수성을 이야기한다면, 그런 특수성들은 다른 특수성들과 부딪칠 수밖에 없다. 이 특수성들을 인식하게 되면 나라는 존재 외부에 있는 외적 존재를 인식하게 되고, 그런 외적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자기 이상을 정하게 된다.
어렵다. 나는 나로만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에... 나의 이상은 나의 이상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이상이기에. 그러므로 나르시스트라고 해도 남을 배제할 수 없다. 오로지 자신만을 바라볼 수는 없다.
즉 자신이 바라보는 자신이 자신이 외적 존재들과의 관계에서 설정한 또다른 자신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이상을 실현하기는 쉽지 않다. 하여 나르시즘을 실현하는 사다리로 저자는 '성공과 공동체'를 든다.
'성공'은 자기 이상을 실현했음을 의미하겠지. 그런데 자기 이상이 나만의 것이 아니니까, 이 성공이라는 말에는 남이 끼어들 수밖에 없다. 남이 끼어든다면 이는 경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나의 준거와 남의 준거가 함께 맞물려 있기 때문에...
여기에 공동체를 이야기하면 사람은 홀로 존재하지 않고, 나르시스트조차도 홀로가 아닌 남과의 관계에서 존재하기 때문에 공동체적 이상을 자신의 이상으로 삼는 경우가 있다. 자발적 복종이라고 해도 좋고, 동일시라고 해도 좋겠다.
이러한 공동체 속에서 성공을 추구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이해한다면 나르시즘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가령 우리 사회를 예로 들어보자. 우리 사회에서 주요 화두로 작동하는 가치가 '공정'이다. 공정을 자신의 이상으로 삼으면 공정을 실현하려 한다. 그런데 이 공정에는 남을 배제할 수가 없다. 공정은 나만의 행위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공정에는 공동체가, 남이 반드시 함께 해야 한다.
자, 내가 공정이라는 이상을 실현하려 하지만 공정이라는 이상은 내가 한 발짝 다가가면 또 반 발짝 멀어진다. 나는 공정을 향해 지속적으로 나아가지만, 공정은 거리는 좁혀지지만 닿지는 않게 된다.
하지만 공정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것이 자기 이상이고, 나르시스트는 결코 자신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정을 향한 무한한 내디딤. 하지만 결코 공정에 도달하지 못함. 그러한 공정이라는 가치에 자신을 복종시킨다. 자발적 복종이 된다. 나르시스트는 자발적 복종을 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책임을 완수해야 하므로.
우리가 이러한 '공정'이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자기 이상을 삼았지만, 그 이상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사람이 있다. 그런 외적 모습에 혹해 진실을 살피지 않고 그의 '공정' 실현이 우리의 '공정 실현'인 양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시간이 지난 뒤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깨닫고 다시 자기 이상을 실현하려 하지만 한번 틀어진 길, 다시 나아가기가 더 힘들다. 지금이 그런 상황 아닐까.
이 책은 우리 내면의 이상을 '나르시즘'이라는 이름으로 고찰하고 있다. 그것이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준거라는 것을. 우리는 그것을 추구하고 실현하려고 하고 있음을. 또 그 길이 결코 쉽지 않음을. 이것이 잘못되면 자발적 복종으로 나아갈 수도 있음을. 그것을 조심해야 함을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