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국적이 중국이다. 중국에서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돌아가셨다고 한다.


참조 기사 : 조선족 대표시인 김철 별세,향년 91세 - 모이자 뉴스 (moyiza.kr)


  고향은 남한에 있는 곡성이라고 하는데, 일제 시대에 중국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조선의 말과 글을 잊지 않았고, 조선의 말과 글로 시를 썼다고.


  중국에서는 꽤 알려진 시인이라고 하는데, 나는 이 시집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1997년에 발간된 이 시집을 통해 그가 추구했던 시세계를 어느 정도 맛볼 수 있다.


이 시집은 그가 북한을 방문하고 느낀 점을 쓴 시다. 남한과 북한에 속하지 않고 중국 국적을 지니고 있는 시인이 통일을 염원하면서 쓴 시.


시집 말미에 있는 후기에서 시인은 '나는 내가 두 번의 북녘땅 기행에서 보고 들은 더 많은 것을 싣고 싶었다'(163쪽)고 썼다. 많은 이야기를 시를 통해 하고 싶었지만, 이 정도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나 보다.


그러면서 그는 '남녘엔 풍요의 비극이 휩쓸고, 북녘엔 빈곤의 비극이 천지를 뒤덮어'(163쪽)라고 하고 있는데, 이후에 남녘도 IMF라는 비극을 겪게 된다. 물론 지금은 극복해서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지만.


북한은 지금도 힘든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시인의 말이 다시 30년이 지나서도 의미를 잃지 않고 있으니, 이야말로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한때 남북이 교류를 하던 때, 시인이 바라던 대로 남한 사람들도 금강산을 갈 수 있었고, 개성도 갈 수 있었는데... 그런데 지금은 서로가 서로를 비방하고, 풍선을 이용해 서로를 자극하고 있으니...


시인이 바라던 통일은 아직도 멀리 있다. 그러면 안 되는데... 시집에 실린 이 시를 읽으면서,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낙지발에 걸려 있는지도, 낙지 발에 있는 그 빨판이 남과 북을 꽉 움켜쥐고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런 낙지 발의 빨판은 우리가 충분히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이겨내야만 하지 않을까. 이제 고인이 된 시인은 그것을 바라고 있지 않을까.


         낙지


  반세기 만에 만나는

  동생을 주려고

  함흥 사는 언니는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

  낙지 한 마리를 들고 왔다


  깡마른 낙지를 사이에 두고

  떨구는 눈물은

  낙지보다 더 찝찔하고


  서로 다른 이야기는

  낙지발에 걸려서

  시종 엇갈리기만 하는데


  정성은 고마워도

  차마 들고 살 수 없는 그 낙지

  우리는

  여덟 개 낙지발에 걸려

  서로의 아픔에 뼈마디가 저린다


김철, 북한기행, 문학사상사, 1997년 초판 2쇄. 88쪽.


지금 우리는 낙지발에 걸려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낙지발은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오래 가게 해서도 안 되고.


늦었지만 김철 시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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