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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시에 뜨는 달 ㅣ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26
데보라 엘리스 지음, 김미선 옮김 / 내인생의책 / 2016년 12월
평점 :
사랑한다는 이유로 억압을 받거나 죽어야 할까? 단지 동성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죽어야 한다면, 그런 사회가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일까?
성소수자가 박해를 받는 경우는 많다. 유대인 학살로 유명한 히틀러의 홀로코스트에서도 성소수자들 역시 학살당했다. 그리고 여전히 동성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나라도 많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고.
그럼에도 현대는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져서 그들을 죽여야 할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아니, 사랑을 하는데 목숨을 걸어야 한단 말인가.
커밍아웃이라는 말과 아웃팅이라는 말이 있다. 성소수자가 자신의 사랑을 스스로 드러내는 방법이 커밍아웃이라면, 자신의 성정체성을 다른 사람에 의해서 알려지는 것이 아웃팅이다. 이 아웃팅은 성소수자를 배제하는데 일조한다.
이 소설은 이란을 배경으로 한다. 혁명이 일어난 뒤의 이란. 이란은 신정국가라고 할 수 있다. 정치인보다도 최고 종교지도자가 더 중요한 사회. 그러한 사회에서 성소수자는 살아남기 힘들다.
여기에 여성이라는 점이 더해지면 더더욱 약자의 처지에 몰리게 된다. 여성이자 어린이, 그리고 성소수자. 이는 이란에서 가장 취약한 자리에 서 있게 된다는 말이다.
여성은 남성보다 하위에, 어린이는 어른보다 하위에, 성소수자는 용인되지 않는 자리에 있으므로, 경제적 지위를 떠나서 이들은 살아가기가 힘들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왕정 복고를 지지하는 엄마와 돈벌기에 혈안이 된 아빠를 둔 파린. 이런 파린은 여학교에 간다. 그곳에서도 친구를 사귀지 못하고 있는데, 어느날 악기를 연주하는 사디라를 만나 친해지게 된다. 그리고 둘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이것이 문제다. 둘이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안 된다. 부유한 가정이 아닌 사디라의 집에서도, 부유한 가정인 파린의 집에서도 둘은 인정을 받지 못한다. 성소수자에 여성이라는 이유로 어떻게든 결혼을 시키려 한다. 종속적인 삶. 주체적인 사랑은 인정받지 못한다.
견디지 못하는 두 사람. 그러나 둘은 곧 체포되어 감옥에 간다. 파린은 부유한 부모 덕으로 탈출을 하지만 그것이 다다. 부모는 파린의 사랑을 인정할 수 없다. 사디라가 먼저 탈출했다고 거짓으로 파린의 탈출을 도운 사람은 파린의 집에서 일하던 아마드다. 아프가니스탄 사람 아마드.
관계는 얽힌다. 아마드는 파린의 집에서는 파린을 존중했지만, 탈출해서는 파린을 존중하지 않는다. 그는 여느 아프가니스탄 남자들처럼 여성 위에 군림하려 한다. 그러니 사디라의 죽음을 전해들은 파린이 아마드의 집에 있을 수가 있겠는가.
여학교의 교장도 마찬가지다. 혁명 정부에서 여학생들도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는 교장이지만, 동성애는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런 아이들이 처벌 받는 것도 감수한다. 그에게 학교란 정부를 지지하는 여성을 키워내는 일일 뿐이다.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여성이 아니라.
아홉 시에 뜨는 달을 보며 이야기를 하면 서로가 서로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자신들의 사랑이 전해진다고 하는 파린과 사디라.
이 둘이 겪는 일들이 가슴을 조인다. 사랑한다는 죄로 죽어가야 하는 사디라와 파린. 어떻게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지.
작가는 담담하게 그런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혁명이 어떻게 개인의 삶을 파괴하고 있는지, 이 대목에서 엠마 골드만이 했다는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는 말이 생각났다.
자신들의 생각을, 삶을 스스로 정하고 살아가도록 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혁명 아니겠는가. 그런데 과연 현실의 혁명은 그러했는지...
이란을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에서 혁명과 개인의 삶이 어떻게 비틀어질 수 있는지를 볼 수 있다. 파린과 사디라의 사랑을. 그러나 작가는 포기하지 않는다. 일말의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소설의 끝부분에서 '하지만 계속 전진할 것이다. 달을 따라 갈 것이다.'(240쪽)라고 하면서 파린의 삶은 여기서 끝나지 않음을, 파린은 자신이 쓴 소설의 주인공인 악마 사냥꾼처럼 계속 나아갈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도 사디라를 마음 속에 품으면서.
이렇게 사디라와 파린이 춤출 수 있는 사회, 그것이 바로 혁명 아닐까. 우리가 꿈꾸는 혁명은 바로 그러한 혁명이어야 한다. 누군가를 억압하는 혁명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