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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평점 :
짧은 소설이다. 한 권이지만 단편소설에 가깝다. 그럼에도 결말을 통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먼 친척집에 맡겨진 소녀 이야기.
얼핏 단순하다. 집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던 아이가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여주는 사람 사이에서 점차 성장해가는 이야기.
아이를 키우는데 연습이 필요하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 연습을 하기 위해서는 준비를 해야 한다. 준비 없는 연습은 없으니까.
그런데 부모가 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연습을 할 수는 없다. 아이는 연습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늘 아이는 실전이다. 따라서 연습이나 준비가 필요하다고 하는 것은 아이 없이 하는 행위일 뿐이다.
다만, 아이 없이 하지만 아이가 있을 때 어떻게 하겠다는 마음가짐을 지니게 되니, 그런 연습은 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도움이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는 연습 없이 부모가 된다. 어느 날 아이가 부모에게 온다. 선물처럼 왔다는 말은 아이와 함께 지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는 뜻이지만, 느닷없이 부모가 된 사람들에게는 아이는 선물이 아니라 짐일 수 있다.
짐이 되는 아이. 그런 아이를 부모는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준비도 연습도 없었지만 마음가짐 또한 아이와 연결되어 있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는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 하나의 실수를 하면 부모는 화를 내고, 그러면 아이는 주눅이 들어 또 다른 실수를 하고.
이런 실수가 반복되면 부모는 이 아이는 어쩔 수 없는 아이라고 여기게 되고, 그런 마음으로 아이를 대하게 된다. 부모의 마음은 아이에게 전달이 되고, 이런 가족은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고 함께 성장해가는 가족이 되지 못한다.
여기저기서 삐걱거리는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아이는 없어졌으면 하는 존재가 된다. 소설 속 아이 역시 마찬가지다.
많은 아이를 키우기 힘든 부모가 아이를 맡긴다. 아이는 자신이 있는 곳에서 다른 곳으로 보내진다. 보내진다는 말을 내쳐진다는 말로 바꾼다면 이는 아이가 다른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는 말이 된다.
이곳과 저곳. 아이는 어느 곳이 자신이 있을 자리인지 선택할 수가 없다. 그러니 작가가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아빠가 나를 여기 두고 가면 좋겠다는 마음도 들지만 내가 아는 세상으로 다시 데려가면 좋겠다는 마음도 든다. 이제 나는 평소의 나로 있을 수도 없고 또 다른 나로 변할 수도 없는 곤란한 처지다.' (17쪽)
이런 상황. 아이가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실수를 안 할 수가 없다. 당연히 실수한다. 그때 그 실수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이것이 아이에게는 자신이 맞닥뜨린 다른 세상을 판단하는 가늠할 기준이 된다. 맡겨진 집에서 첫날 오줌을 싸는 실수를 한다. 하지만 새로운 가족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인다. 오히려 아이가 민망해하지 않도록 대응을 한다.
그러면서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한다. 아이는 차츰 이 가족에서 자신의 자리를 잡아간다. 가족에서 자신의 자리가 없다고 느끼는 아이는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겉돌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가족에게는 애물단지가 된다.
그러나 가족에서 자신의 자리가 있는 아이는 당당한 가족 구성원이 된다. 함께하는 가족이 된다. 맡겨진 소녀는 이렇게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다. 가족 구성원이 된다. 그러던 어느 때, 다시 원가족이 데리러 온다.
소녀에게 진정한 가족은 어디인가. 다시 다른 세상으로 내쳐지는가? 원가족에서 입양가족으로 갈 때의 소녀와 입양가족에서 원가족으로 갈 때의 소녀는 같은 소녀가 아니다.
이미 소녀는 성장했고, 가족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있는 소녀가 되었다. 그렇다고 작가가 명확하게 결론을 내고 있지는 않다. 다만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아빠'라는 말 두 번. 이 두 번의 '아빠'가 큰 울림을 준다.
"아빠." 내가 그에게 경고한다. 그를 부른다. "아빠." (98쪽)
경고하고 부르는 아빠가 누구인가? 소녀는 누구를 아빠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짧은 소설이지만 맡겨진 소녀를 서술자로 해서 이 아이에게 어떤 가족이 필요한지, 아이가 성장하기 위해서 가족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단지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가 가족일까? 혈연이 아닌 다른 형태의 가족이 더 가족다운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 때가 있다는 사실. [빨강머리 앤]에 나오는 그런 가족의 모습을 이 소설에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