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사신 - 20세기의 악몽과 온몸으로 싸운 화가들
서경식 지음, 김석희 옮김 / 창비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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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부음을 들었다. 돌아가셨다고. 그가 쓴 책을 몇 권 읽었는데, 그의 형들에 대한 이야기가 마음 속에 남아 있었는데, 지금 기대수명으로 따지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떴다. 서경식. 내게 '디아스포라'라는 말을 기억하게 한 사람.


그가 오래 전에 낸 책이다.


화가와 작품과 역사가 나오는 그런 책.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말이 있는데, 예술 속에 작가의 인생이 녹아 있기 때문에 예술가의 생물학적인 삶은 짧겠지만, 그의 예술적 삶은 길다.


서경식과 같은 작가의 삶도 마찬가지다. 그가 쓴 글들이 남아 있는 한 그의 삶은 지속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가 말했듯이 삶은 곧 기억이다. 기억이 계속되는 한 삶은 지속된다.


이 책에는 많은 작가들이 나와 있다.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반에 발표된 작품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 서양 사람들이 '벨 에포크'라고 부르는 아름다운 시절이 있기도 했지만, 주로 전쟁으로 점철된 시기다.


아름다운 시절 역시 무언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작가들은 그걸 놓치지 않는다. 그들의 민감성이 작품 속에 시대가 녹아들게 한다.


물론 이 책에는 그런 시대를 녹여낸 작품들도 있지만, 시대에 편승한 작품들도 있다. 일본 군국주의 시대에 군국주의를 옹호한다고 할 수밖에 없는 작품을 그린 작가도 언급한다.


왜냐? 그런 작가를 기억해서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게 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책의 작은 제목이 '20세기의 악몽과 온몸으로 싸운 화가들'이지만 아닌 화가가 한둘 나오기는 한다.


그들은 악몽과 싸우지는 않았지만, 우리에게 그런 악몽이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으니, 다룰 만하기는 하다.


이제 그는 세상에 없지만 그가 남긴 글들은 우리 곁에 남아 있으니... 그의 글 중에서 지금 우리가 새겨야 할 말을 인용한다. 


파울 클레의 '새로운 천사'를 역사의 천사라고 설명하는 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클레의 이 그림을 발터 벤야민이 소장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가 죽은 뒤의 일이다.



'벤야민이 죽은 뒤, 인류는 '홀로코스트'를 경험했다. 벤야민이 예감했을 뿐 실제로 목격하지 못한 이 사건을 '역사의 천사'는 목격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땅에서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어 새로운 피해자를 낳는 암울한 변증법까지 목격했다. 진보라는 강풍에 날리는 천사의 눈에 지금은 어떤 폐허의 풍경이 비치고 있을까' (106쪽)


지금 우리 시대에도 이런 역사의 천사들이 목격하고 있는 장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다.


늦게나마 서경식 선생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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