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기의 끝 그리폰 북스 18
아서 C. 클라크 지음, 정영목 옮김 / 시공사 / 200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SF소설인데 제목이 '유년기의 끝'이다. 유년기라고 하면 어린 시절 아닌가. 그런 유년기의 끝이라면 성장이 되는 시기인 청소년기를 말해야 하는데, 청소년기는 어른에게서 독립해서 나아가려는 시기로 정의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유년기란 무엇인가? 행복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은 의식하지 못하지만 행복으로 충만한 시기. 인류의 역사로 따지면 황금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유년기의 끝은 인류에게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때가 왔다는 말인데...


그런 시기에 닥친 인류는 행복할까? 유년기를 벗어나 청소년기, 중장년기를 거쳐 노년기에 이르는 동안에 사람은 많은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이때 그런 시기를 거치는 인간은 개인이다. 다들 이런 시기를 보편적으로 거치지만 경험은 개인적으로 하게 된다.


즉 잘 기억하지 못하는 유년기를 제외하면 청소년기부터는 자아라는 개인의 경험으로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 그러니 집단이 아닌 개인으로서의 삶을 영위하게 된다. 즉 유년기의 끝은 보편성에서 개별성으로 전환되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한데 이 소설은 반대다. 개별적인 인간들이 보편적인 인간처럼 개성을 잃어가면서 행복하게 살던 시대가 중간에 나온다.1부가 '지구와 오버로드'이고 2부가 '황금시대', 3부가 '최후의 세대'다.


지구에 외계인이 나타난다. 엄청난 과학기술의 발전을 앞세워 그들은 인류에 개입한다. 즉 전쟁을 없애고, 지구연합을 결성하게 한다. 선의를 지닌 독재자가 된다. 그들을 인류는 오버로드라고 부른다. 여기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구연합으로 평화를 이루는 것도 좋겠지만, 개별성을 잃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잃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즉 인간의 자율성을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가, 굶주림으로 죽어간 사람들은. 국경으로 인해 나타난 여러 폐해들은?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오버로드의 뜻대로 지구연합을 결성한다.


그것이 1부다. 지구엔 이제 전쟁은 없다. 살육도 없다. 굶주림도 없다. 그야말로 황금시대다. 누구나 원하는 만큼 일하고 쉬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시대. 그럼에도 이런 황금시대에도 그런 행복이 외부로부터 왔다는 사실에 불편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 스스로 찾아낸 행복이 아니다. 오버로드들에 의해 주어진 행복이다. 이런 결과에 완전히 거스르지는 않지만 자신들만의 자율 공동체를 결성해 살려는 사람들이 나온다. 2부에 그런 내용이 펼쳐진다.


여기에 오버로드들과 교류하는 인간도 나오고, 도대체 오버로드들이 왜 지구에 왔는지는 밝혀지지 않는다. 몰래 오버로드의 별로 가는 사람도 나온다. 그리고 지구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3부에서는 어린아이들을 중심으로. 어린아이들은 기존 어른들과 다르게 성장한다. 그들은 개인이 아니라 집단으로 변해간다. 즉 의식의 공유라고 해야 하나. 개별적인 몸이 그들에게는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 그러니 가족이란 개념도 이제는 사라져야 할 시기다. 유년기의 끝이다. 우리 인간이 성장하는 모습과 반대 방향으로.


우리에게는 유년기의 끝은 보편성에서 개별성으로 나아가는 시기라면, 이 소설에서 유년기의 끝은 개별자로 존재했던 인류가 보편적 인간이 되는 시기를 의미한다.


이제 개인 인간은 없다. 의식을 공유하는 보편 인간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지구에 있을 필요가 없다. 지구는 그들에게 중요한 요소가 아니니까. 지구는 사라진다. 그 사라짐을 2부에서 오버로드들의 우주선을 타고 그들의 행성까지 갔다 온 잰이라는 사람의 눈을 통해 서술한다.


이렇게 소설은 오버로드라고 불리는 외계인이 지구에 나타난 순간부터 지구가 사라지는 순간까지를 서술하고 있다. 지구의 시간으로 하면 100년이 넘는 시간. 그 과정에서 인류가 살았던 지구는 사라진다.


그러나 다시 태어난 인류는 우주에서 계속 살아간다. 오버로드를 통제하고 있는 존재를 오버마인드라고 부르는데 그렇게 하나가 된 정신을 다른 우주로부터도 계속 충원하고 있는 존재를 부르는 말이다.


1950년대에 발표된 소설인데, 이것을 디스토피아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외계인에 의해 잠시 행복한 순간을 맞이하지만 지구가 사라져버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행복은 외부에서 올 수가 없겠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자신이 추구하지 않고 그냥 주어진다면, 또는 생각을 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그냥 받아들여야만 한다면, 그것을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여기에 자신들의 운명에 개입하지도 못하고 휩쓸려 살아갈 수밖에 없을 때 과연 그것이 바람직한 삶일까?


인류보다 고도로 발전한 지성체인 오버로드들도 오버마인드를 알지 못한다. 그들 역시 오버마인드가 왜 인류를 새롭게 개조했는지 모른다. 그만큼 불확실만이 현실인 세상이다. 


아마도 1950년대 역사적 불확실성 속에서 작가는 인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 여기서 길을 잃으면 인류의 종말로 나아가게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표현하고 있단 생각이 들지만...


지금 우리 현실은 소설과 다르다. 소설에서처럼 우주 개발을 오버로드들에 의해 하지 못하게 되었던 인류가 아니라 다시 달을 기지로 활용하고자 달에 가려고 하고 있으며, 그런 달을 기반으로 삼아 화성에 인류를 보내겠다고 하고 있으니.


우주에 우리가 모르는 생명체가 있을 수 있고, 다른 문명이 있을 수 있지만, 발전된 문명에 의해서 조종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힘으로 비록 느릴지라도 서서히 탐구해나가는 것이 인류의 본 모습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소설에서처럼 외계 생명체에 의한 행복이 과연 황금시대라 될 수 있을지 그런 오버로드들을 다른 대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