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샀다. 백석과 보낸 며칠간이라니... 제목만 보고, 백석 시를 읽고, 그 시를 자신의 마음에 받아들이는 시간을 지녔으리라 생각했다.


 좋은 시를 만나면 그 순간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마음 속에 담아두려 하고, 좋은 시인을 만나면 그 시인의 시를 계속 찾아서 읽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백석이란 시인은 지금은 많이 알려져 있어서, 그의 시를 구하기 쉽지만, 예전에는 재북시인이라고 해서 우리가 읽어서는 안 되는 시인이었다.


  그런 시인과 더불어 며칠을 지냈다니 시집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시집을 펼쳐 제일 먼저 읽은 시는 제목이 된 '백석과 보낸 며칠간'. 백석 시도 적절하게 인용되어 있고, 그러한 백석의 시를 읽으면서 자신이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보여주는 시다. 이 시의 마지막 부분 좋은 시를 읽었을 때, 좋은 시인을 만났을 때 느끼는 그러한 마음이 절절하게 잘 표현하고 있다.


'백석과 보낸 며칠간 가난한 내 영혼에서 / 볍씨 같이 싹 트던 맑은 눈' ('백석과 보낸 며칠간'에서. 79쪽)


좋다. 이렇게 시를 읽으며 '맑은 눈'이 트이면 얼마나 좋을까. 시집을 읽는 이유가 그것일 수 있다. 척박한 세상에서 맑음을 찾는 마음, 그 마음이 시집을 찾게 하는지도 모른다.


많은 시 중에서 이 시, 누군가에게 이런 센서 등이 되거나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은 맑은 눈뿐이 아니라 맑은 마음까지도 지닌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시를 보자.


            센서 등


  저 소녀 성능 좋은 센서 등, 소년이 다가가자 환히 켜져

  소녀의 웃음은 빛난다. 소년이 떠나면 곧 꺼질 것이다.

  나도 꽃 피는 봄이면 내 마음도 탁 하고 켜져 오래 환했다.

  옛날 어머니도 아버지에게 센서 등, 아버지가 기술자로

  울산공단에 오래 있다 돌아오는 발소리 동네 입구를 울리면

  아무리 늦은 밤이라도 어머니는 탁 켜져 목련꽃보다

  화사하게 빛이 났고 이처럼 세상 모든 사람 각자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을 가졌기에 사람이 나타나거나 사라지면

  환히 켜지거나 캄캄하게 꺼지기도 해, 불야성의 도시라도

  사람이 쉼 없이 자동으로 꺼졌다 켜졌다 하기에 아름다워

  지금도 누가 다가가는지 멀리서 탁 하고 켜진 환한 얼굴이 보여


김왕노, 백석과 보낸 며칠간, 천년의시작. 2022년. 76쪽.


아름다운 시다. 소녀만이 성능 좋은 센서 등이 아닐 테다. 소년도 역시 성능 좋은 센서 등이다. 아니 우리는 누군가에게는 성능 좋은 센서 등이 된다. 그가 오면 그를 위해 빛을 내는 센서 등. 그가 없을 때는 그를 기다리며 빛을 감추어두고 있는 센서 등.


누군가에게 이런 센서 등이 된다는 것, 사랑하는 일이다. 꼭 누군가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존재들에게 반응하는 그런 센서 등을 지닌 사람. 


세상을 아름답게 살 수밖에 없다. 그는 다른 존재들에게 빛을 내어주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많은 세상, 그렇게 환한 얼굴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세상, 그것이 시인이 바라는 세상이고,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다.


시집을 읽으면서 어떤 시에는 마음이 찡하기도 하고 ('황발이'80-81쪽) 어떤 시는 세상을 살아낸 뒤의 내 모습을 생각하게 하기도 한다.('아직도 아름다운 일몰이여'-26쪽, '장엄한 일몰'-106쪽)


무엇보다 우리도 빛을 낼 수 있음을 시를 통해 알 수 있으니 그것이 즐거운 시 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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