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에 속삭이는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5
임철우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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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이 나에게 건넨 말]을 읽다가 알게 된 소설이다. 임철우 작품은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아버지의 땅'과 '봄날'은 읽었으니 어느 정도 믿음이 가는 작가였고.


그런 임철우 작가가 6.25와 광주민주화운동에 이어 4.3을 다룬 소설을 썼다기에 읽어야지 하고 있었다. 마침 [4.3이 나에게 건넨 말]에서 이 소설을 다뤄주었으니, 꼭 읽어야지 하는 결심을 하고 구입.


뜸을 들이다 읽기 시작. 먼저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4.3은 비극이니까. 어떤 슬픔이 몰려올지 모르니 마음에 어떤 각오를 하고 읽기 시작. 


주요 인물은 셋이다. 은퇴한 뒤 제주도에 내려가 사는 한(민우), 그런 한민우에게 언뜻언뜻 나타나는 정체 모를 아이들 몽희(몽구, 몽선), 그리고 한민우에게 그 아이들에게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윤(천엽). 여기에 한 존재를 더하면 개 망고.


제주도에 내려와 사는 한에게 이상한 느낌이 드는 일이 잦다. 왜 그럴까? 망고도 이상한 행동을 하고. 꿈 속에서도 아이들이 보이고. 그러다 장 가는 할머니들을 태우게 되는데, 여기서 윤씨 할머니에게서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1948년에 벌어졌던 비극에 대해서. 그리고 왜 자신에게 그 아이들이 보이는지를 몽희의 입을 빌려 독자에게 알려준다. 무심한 사람은 절대 볼 수 없는 존재들. 그런 존재들을 볼 수 있는 마음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데, 그런 마음을 소설에서는 '아파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어떤 마음이 아파하는 마음일까? 몽희의 말을 빌리면 아파하는 마음은 바로 이렇다. 이 아파하는 마음이 아파하는 마음과 공명하게 된다.


'혼자서 길을 걷다가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사람. 그건 십중팔구 특별한 눈을 가진 사람이라는 표식이야.' (63쪽) 그런 마음이 '아파하는 마음'(64쪽)이라고 한다. 


어쩌면 4.3을 직접 겪은 천엽도 그런 아파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있었을 것이고. 그들이 살아온 세상을


'아버지도 나도 지옥에 갇혀 있었다는 걸. 단지 우리에게 죄가 있다면, 하필 그 지옥에 함께 있었다는 죄뿐이라는 것도요…….'(168쪽) 라고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옥에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아니, 신조차도 무엇을 할 수 없는 곳이 바로 지옥 아닌가. 그래서 지옥을 없앨 수 없는 신이 그나마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만든 곳이 이 소설에 등장하는 제주 신화를 빌려서 이야기하는 서천꽃밭 아닐까. 아이들만 갈 수 있다는.


아이들은 지옥에 가기에는 너무도 순수하니까, 현세의 지옥에서 벗어나 아이들이 그나마 안주할 수 있는 곳을 만들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 서천꽃밭도 아무나 볼 수는 없다. 서천꽃밭을 볼 수 있는 어른은 바로 '아파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자신이 살아온 역사가 바로 지옥이었음을 깨달은 윤씨 할머니는 어느 정도 아파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한이 찾는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 즉 과거를 다시 현재로 불러내오는 용기. 그것은 바로 아파하는 마음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힘들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굳이 불경 중 '유마경'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세상이 아프면 사람도 아플 수밖에 없으니... 그 아픔을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지옥도 천국처럼 여기고, 지옥에서 잘살려고 악마처럼 변해가겠지만, 아파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지옥을 지옥으로 느끼기에, 그 지옥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더욱 힘든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몽희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남다르게 '아파하는 마음'을 가졌으니까. 그런 마음의 눈, 영혼의 눈을 가진 이들만이 우리들의 존재를 알아보고, 감지하고 또 공감할 수 있어. (205쪽)

 ...만일 당신이 언젠가 그 눈을 갖게 된다면, 당신은 그 순간부터 지상을 떠도는 수많은 불행한 혼들의 슬픔, 절망, 원망, 분노, 고통과 직접 마주쳐야만 해.

  진정으로 두려움 없이 마주할 수 있을 때라야만, 당신은 그들의 검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검은 상처를 어루만지고, 검은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 테니까…….'(206쪽)


그냥 아파하는 마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그 아픔이 주는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 그때서야 비로소 아파하는 마음들이 함께 할 수 있다.


서로의 아픔을 치유하면서 더한 아픔이 생기지 않도록 할 수 있다. 그래서 역사적 상처는 반드시 치유의 과정이 필요하다. 치유를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아픈 마음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진정한 공감. 진실한 사과. 그리고 행동의 변화. 소설은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관광의 섬인 제주도에서 마냥 나만의 즐거움만을 찾지 말라고... 제주에 배어 있는 역사적 아픔을 보듬을 수 있어야 한다고.


'그러므로

그 섬에 가거든, 돌담 그늘에 누운 어린 혼들의 고단한 잠을 함부로 깨우지 않도록 조심하기를.


고즈넉한 마을, 이끼 낀 돌담길을 지나거나, 바람찬 들녘의 구불구불한 밭담 사이를 걸을 때나, 혹은 오름 기슭 외진 골짜기에서 이름 없는 돌무더기들과 마추지거들랑.


부디

목소리 발소리를 낮추고

가만가만 지나가기를…….'(224쪽)


이렇게 소설은 가만가만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소설 속 인물인 한민우가 아이들을 볼 수 있듯이 그렇게 우리 역시 들을 귀, 아파하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고. 그것이 우리가 4.3을 기억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고.


그것이 바로 지옥에서 벗어나 서천꽃밭을 볼 수 있는 눈을 지니게 되는 방법이라고.


이제 봄이 다가오고 있다. 다시 4.3이 올 것이다. 역사의 한 순간으로 지나치는 날이 아니라 아직도 우리가 짊어지고 가야 할 그런 아픔이니.


임철우의 이 소설. 우리에게 '아파하는 마음'을 전달해주고 있다. 함께 공명하자!



덧글


그런데 읽다가 잘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다. 

'1948년. 기축년 그해 겨울.'(83쪽)이라고 나오고, 또 '1948년 12월 중순.'(140쪽)이라고 나와 몽희네가 죽은 해는 1948년으로 봐야 할 것 같은데, 1948년은 기축년이 아니라 무자(戊子)년 아닌가. 이게 헷갈린다. 찾아보면 기축년은 1949년으로 나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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