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불교문학상 수상시집이다.


  1회부터 10회 수상자의 수장작과 대표시를 모아놓았다.


  이름을 들으면 알 수 있는 시인들... 상을 받아서 유명한 시인이 아니라, 이미 자신의 시세계를 갖추고 있던 시인들이다.


  그래도 불교문학상이니, 불교에서 말하는 무엇과 통하는 것이 있으리라.


  무량하다는 말을 찾아보면 '정도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라고 되어 있다.


내가 생각하는 불교는 정도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음을 추구하지 않고, 오히려 헤아리지 아니함을 추구한다고 생각했는데, 무량한 소리라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소리라니... 소리가 없어야 하지 않나.


그래서 스님들은 간혹 묵언 수행을 하지 않나 하는 생각. 부처는 수많은 말을 했지만 그 말들은 진리로 향해 가는 수단일 뿐, 말이 목적이 되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


그래서 말보다는 행동, 또는 마음과 마음으로 뜻을 헤아리는 과정을 중시했다는 생각도 하는데, 시 역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시도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함축이니 비유니 할 것 없이 시는 다른 어떤 글보다도 짧다. 그 짧음 속에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니 무량한 소리라는 것은 많은 소리가 아니다. 한 소리에 담긴 수많은 소리라는 뜻이리라. 즉 하나에 담긴 여럿이라는 의미. 하나가 전체가 되는 모습. 그러한 시들이 아마도 현대불교문학상을 받았으리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물의를 일으킨 모 시인을 제외하고, 이 시집에 실린 시들 좋다. 이미 알고 있는 시들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시집을 읽으면서 시들에 담긴 많은 뜻을 생각하게 된다.


불교가 속세를 벗어나서 수행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니다. 부처 역시 속세를 벗어나 수행을 했지만 다시 속세로 돌아왔다. 


처음의 나가 아닌 깨우친 나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불교가 추구하는 모습이다. 시 역시 마찬가지다. 시인에게만 속한 시가 아니라, 시인과 독자들이 함께 하는 시들이 사랑받는 시가 된다. 


그런 시들은 사회를 떠날 수도 없고, 또 사회를 떠난 시도 없다. 개인의 감정을 노래하더라도, 그런 개인의 감정 역시 사회와 관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뭐, 도 닦는 소리는 그만하고, 지금 우리 사회를 떠올리는 시를 한 편 발견했다. 다른 시들도 좋지만, 이 시를 생각한다.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있는 소위 지도층이라고 자부하는 인간들이 있어서 문제지만...


제9회현대불교문학상을 수상한 이시영의 대표시라고 실린 시 중 하나다.


     비유의 시


횟집 주인은 일부러 수족관에 상어를 밀어 넣는다

다른 물고기들이 살해의 위협 속에서 자신의 죽음을 성찰할 수 있도록 

우리나라 동해 인근에도 제국의 전함은 유유히 떠 있을 것이다.

약소국들이 살해의 위협 속에서 늘 자신을 성찰할 수 있도록


무량한 소리 -제 1-10회 현대불교문학상 수상시집, 불교문예출판부. 2005년. 151쪽.


설마? 이런 깊은 뜻으로 정치를 하고 있지는 않겠지... 성찰이 아니라 우리를 위협으로 몰고 가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러니, 시인의 시가 '비유의 시'가 되겠지. 


이 시 속에서 너무도 많은 소리들을 들을 수 있으니... 이런 식으로 이 시집에는 '무량한 소리들'이 실려 있다.


그냥 참고로 제1회부터 10회까지 수상한 시인의 이름을 적어본다. 


최동호, 나태주, 정현종, 고은, 최하림, 신경림, 이근배, 정희성, 이시영, 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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