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비타, 나의 버지니아 큐큐클래식 7
버지니아 울프.비타 색빌웨스트 지음, 박하연 옮김 / 큐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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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는 사적이면서 공적이다. 일기와 달리 자신만이 보지 않고 상대방이 보게 쓴 글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내면을 담고 있지만, 그 내면이 상대에게 전달이 되어야 한다. 나와 남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편지가 한다.


나와 상대. 단 둘만이 간직하고 있으면 사적인 글로 그쳤을 텐데, 편지는 둘 다 폐기하지 않는 한 어느 한쪽이 쓴 글이라도 살아남는다. 그래서 둘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도 읽히게 된다. 이때 편지는 공적인 존재가 된다.


편지가 문학이 될 수도 있음을 유명한 사람들이 죽은 다음에 발간된 편지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 중에 카프카의 편지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카프카의 편지에서 그 유명한 구절 '책은 도끼여야 한다'는 말이 있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을 읽지는 못했다. 읽어야지 하면서도 선뜻 손에 잡지 못했다. 지금도 그렇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반면 울프의 다른 글들 [자기만의 방]과 같은 글은 어쩌다 읽게 되었는데... 계속 버지니아 울프는 언젠가 읽어야 할 작가로 내게 남아 있다.


이번에 [나의 비타, 나의 버지니아]는 비타 색빌웨스트와 버지니아 울프가 주고 받은 편지를 모아 놓았다. 1923년부터 1941년 버지니아 울프가 죽기까지 주고 받은 편지들. 무려 18년이다. 방대한 양이 남아 있을테니, 책으로 편찬할 때는 그 중에서 선별을 했을 테다. 선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600쪽이 넘는다. 


만남-사랑-우정이라는 제목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이 주고받은 편지들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살필 수 있게 한다. 


사랑이든 우정이든 이 둘 사이에는 굳은 신뢰가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의 작품에 대해서 경탄하면서 서로를 북돋워주기도 하고, 서로를 살뜰히 챙기는 모습이 편지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울프의 소설 [올랜도]가 비타를 모델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비타 색빌웨스트가 내가 몰라서 그렇지 꽤 많은 작품을 썼으며, 잘 알려진 작가였다는 점에서 울프 주변의 인물들에 대해서도 남성 중심으로 편협하게 알고 있지 않았나 반성하기도 했다.


그러니 이 책을 읽으면 울프 소설을 꼭 읽어야겠다는, 특히 비타가 극찬하고 있는 [등대로]라든지, [올랜도]는 시간 내서 꼭 읽어야지 하는 결심을 하게 됐는데...


당시 영국은 동성애에 엄격한 나라였다. 일례로 오스카 와일드도 동성애로 감옥 생활을 했으며, 컴퓨터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앨런 튜링도 동성애로 탄압을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 버지니아와 비타가 어느 정도 동성애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이들이 동성애로 처벌을 받지 않은 이유는 둘 다 결혼을 했다는 점에 있지 않을까 한다. 


겉으로는 이들은 이성애자로 보였을 테고, 버지니아와 비타의 관계는 동료 작가 또는 문학을 하는 선후배 정도로 인식되었을 수도 있겠다.


동성애든 이성애든 이 둘의 관계에서는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점은 둘의 만남이 서로의 문학활동에 좋은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작품에 대한 영감을 얻고, 지지를 받고, 다른 사람들의 비평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들의 문학을 추구해갈 수 있는 힘을 서로에게 얻었다는 점. 


그런 관계를 통해서 우리에게 좋은 문학을 감상할 기회를 주었다는 점. 그런 점들을 이들이 주고받은 편지를 통해서 발견하게 된다.


서로에 대한 사랑, 서로에 대한 우정으로 10년이라는 나이 차이를 극복한 버지니아와 비타. 그런데 이렇게 서로를 위하던 사람이었는데, 비타는 버지니아의 죽음을 예감하지 못했을까? 


이 책을 보면 버지니아가 비타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가 1941년 3월 22일이다. 그리고 버지니아는 3월 28일에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겨우 6일 차이...마지막 편지에 '우리가 언제 가게 될까?'(633쪽)라고 하며 비타와의 만남을 기대했던 버지니아인데.


예민한 버지니아에게 전쟁 상황, 주변에 떨어지는 폭탄들, 견디기 힘든 경제 상황 등이 더욱 견디지 못하게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비타가 그렇게 많은 도움을 주려고 했음에도...


버지니아와 비타가 주고받은 편지. 이 편지들을 통해서 개인 버지니아 울프에게 좀더 다가갈 수 있어서 좋았고, 비타 색빌웨스트라는 작가에 대해서 알게 되어서도 좋았다.


서로가 서로를 챙기면서 북돋워주는, 문학 활동을 하는데 서로 도움을 주는 그런 모습. 그런 모습이 오롯히 드러나고 있는 편지 모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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