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지향과 몸의 불일치. 내 몸에 다른 이가 들어와 있다고 할 수 있고, 다른 이의 몸에 내가 들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식으로 이야기하든 몸에 둘이 있다. 둘은 나와 남이라는 분리 의식을 지니고 있다.


  나는 나고, 너는 너다라는 이분법의 세계에서, 나는 너이고 너는 나일 수도 있다는 너와 나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일은 사회에서 용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는 수많은 나로 구성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수많은 나라는 존재들 사이에 너는 없다. 그러므로 내 몸에 들어온 너는 잘못 들어온 너가 되고, 너 안에 들어간 나는 잘못 들어간 내가 된다.


  과연 그런가? 성적 지향과 몸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해서 잘못 들어간 나, 또는 잘못 들어온 너라고 할 수 있는가?


나를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나 중에, 너도 있을 수 있고, 그런 나와 너 중에는 서로 다른 지향을 지니고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문제는 이런 너와 나를 어떻게 한몸에서 융합할 것이냐에 있다. 하나를 내쫓는 것이 아니라 하나를 또 하나가 받아들여 다른 하나로 함께 지내는 일.


이번 시집 제목이 된 '슬픈 게이'란 시에서 통합의 모습을 발견한다. 일부만 인용한다.


1

손바닥에 너의 두 눈 / 내 눈을 빼고 그걸 끼운다. / 코와 입 귀를 지우고 / 너의 코와 입 귀를 덮는다. / 머리카락을 뽑고 / 너의 머리카락을 / 씌운다. // 내 얼굴은 사라지고 / 거울 속에 비친 네 얼굴 / 웃는다 너처럼. / 너무나 생생한 예전의 너의 미소 / 그걸 흉내낸다. / 내 생각이 너의 생각이도록 / 반복하고 반복한다.  // 너를 연기하는 배우가 아냐. / 네가 되어 너의 삶을 살아가는 거지.      (채호기, 슬픈 게이, 문학과지성사. 2010년 초판 10쇄. '슬픈 게이' 중 부분. 86쪽)

 

쉽지는 않은 일이다. '네가 되어 너의 삶을 살아가는' 일이 쉬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때문에 슬프다. 하지만 슬프다고 해서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계속 노력한다. 살아가려고, '반복하고 반복한다.'


이러한 반복을 통해서 힘든 일이지만 너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게이 1' 시를 보면 이 점이 더 잘 나타난다.


게이 1


내 몸을 다 / 뒤지고 돌아다녀도 / 내 들 곳은 없어라, 내 몸의 / 벼랑에 서서 생각하느니 / 저 꽃의 몸으로 / 저 바위, 저 파도의 몸으로 / 저 새의 몸으로 / 태어났다면 나는 지금껏 / 어떤 길을 걸어왔을까 / 허공 중에 흩어나는 너의 향기 따라 / 나를 던지느니, 저 포말의 몸으로 태어날 건가 / 벼랑의 컴컴한 틈에 아슬아슬히 / 피어 있는 꽃 한 송이 나를 잡아채니 / 너는 내 안의 오랜 나였구나 // 한 꽃 속에 모든 여성이 들어 있고 / 한 여성 속에 모든 꽃이 숨어 있으니 / 나는 내 육체의 경계를 빠져나와 / 네 몸으로의 험난한 벼랑을 기어오른다네 


채호기, 슬픈 게이. 문학과지성사. 2010년 초판 10쇄. 94쪽.


'너는 내 안의 오랜 나였구나'라는 구절을 통해서, 나를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나 중에 너도 있음을, 그래서 너를 추구하는 일이 결코 나를 잃는 일은 아님을 말하고 있다.


요즘은 조금 나아졌다고 하지만 성적 지향과 몸의 불일치를 이루는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차가운 경우가 있다. 스스로도 버거워 하는 경우가 있는데, 시인은 이를 '게이 4'라는 시에서 보여주고 있다.



게이 4


내 몸이 / 내게 맞지 않다 // 몸에 갇혀 /끙끙거리는 / 나 아닌 / 몸 속에 / 다른 이의  / 애타는 / 목소리. // 덜컹거리는 몸에 실려 / 나의 일생을 떠메고 가는 / 잘못 입은 너의 / 몸의 / 쓸쓸한 뒷모습.


채호기. 슬픈 게이. 문학과지성사. 2010년 초판 10쇄. 98쪽.


여전히 힘들어 하고 있는 사람을 향해 곱지 않은 시선을 줄 필요가 있을까? 그가 자신 속에 있는 수많은 나와 너들을 받아들이고 '너를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너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우리 역시 받아들여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여러모로 생각할거리를 제공해 준 채호기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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