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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폭식 사회 : 기술은 어떻게 우리 사회를 잠식하는가? - 2022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2023년도 한국과학기술출판협회 선정 우수과학도서
이광석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2년 11월
평점 :
디지털, 인공지능에 환호하고 있을 때 그를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디지털이나 인공지능이나 또는 메타버스나 다 기술이다. 기술이 발전하는 것을 진보라고 보고, 이에 집중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는 아니다. 어쩌면 다른 나라보다도 더 빨리, 더 강하게 디지털화를 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학교 교육에서 이 점은 두드러진다. 학교에서 인공지능에 대한 학습을 시켜야 하며, 칠판은 전자칠판으로 바뀌어야 하고, 교과서는 디지털 교과서가 되어야 하며, 학생들 개개인에게는 디지털 기기를 하나씩 보급해야 한다.
대면으로, 서로 몸을 부딪히며 경험해가는 교육에서, 교사와 학생이 얼굴을 맞대고 수업을 하던 장면에서 이제는 중간에 디지털 기기가 끼어들어 교사는 디지털 기기를 작동시키고(또는 학생들이 디지털 기기를 작동하며), 학생들은 그 기기를 통해 배움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미래 교육의 모습이다. 과연 좋을지? 코로나19로 대면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밝혀졌음에도, 학교라는 공간에 나오더라도 학습은 디지털 기기와 하는 비대면 교육이 강조되고 있으니, 가히 디지털 사회라고 할 수 있다.
학교가 이런 정도에 이르르면 사회의 다른 부문에서는 더욱 디지털화가 가속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대체로 교육은 어떤 기술이 완성단계에 이르렀을 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기술을 우선시 하는 태도는 질병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나타난다.
인수공통감염병조차도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더욱더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현실에서 저자는 그런 사회가 결코 행복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그는 그런 사회를 '디지털 폭식 사회' 또는 '기술 폭식 사회'라 부르고 있다. 저자가 정의하고 있는 기술 폭식 사회는 이렇다.
'기술 폭식 사회는 그 어떤 때보다 사회가 기술에 매달리고, 기술 그 자체를 사회문제의 직접적 해결책으로 보고, 자본주의 기술 그 자체에 대한 이성적 판단이나 성찰의 여유가 적을 때 발생하는 이상 현상이다.' (205-206쪽)
과학기술이 초래한 문제는 과학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도록 하는 정책보다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자신들의 생활 형태를 바꿀 생각을 하지 않고, 기술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하는 발상. 또 그런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디지털 사회가 어떤 문제를 야기할지에 대한 논의도 없이 그렇게 나아가야 한다고 믿고 추진한다.
이런 사회에서 기술을 통제하는 자들이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에 의해 움직이게 된다. 지금도 그렇다. 인터넷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좋아요' 아닌가. 팔로워 숫자와 좋아요 숫자로 자신의 처지를 가늠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또한 검증되지 않은 일들을 얼마나 빠르고 쉽게 유통시키는가? 그것을 바로잡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는 우리가 몇 해 동안 계속 경험해 오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이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런 기술 권력의 문제는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개인의 도덕성, 개인의 책임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기술에 대한 사회적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것은 불가능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술 권력의 품에 안기게 된다. 저자의 말을 인용한다.
'기술 권력의 문제는 곧 기술을 오남용하는 사회에 대한 급진 정치적 개입이나 기술 실험과 연결되어야 문제의 해결 지점이 보인다. 이 점에서 개인의 데이터 역량을 키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술에 대한 개인 성찰 능력에 더해, 묵은 기술과 새로운 기술의 도시설계 속 배합과 앙상블, 거의 모든 연령과 세대에 두루 친숙한 기술의 보편적 접근과 사회 공통의 보편적 '기술 감각' 마련, 사회적으로 민감한 기술 도입 시 시민 숙의 과정의 정례화, 풀뿌리 대안 생태 기술의 장려 등 기술 대안의 상상력을 동시다발적으로 창안해내야 한다.' (236쪽)
이런 주장이 있음에도 사회적으로 민감한 기술에 대해 과연 시민 숙의 과정을 거친 적이 있었던가? 디지털, 인공지능 시대가 되었다고 뒤처지면 안 된다고, 더욱 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은 있지만, 여기서 잠시 멈추고 디지털 사회가 초래할 문제를 생각해 보자는 주장은 언급이 되지 않는다.
이런 주장은 소수에게서 나오고 있지만, 더이상 퍼지지 않는다. 지지자를 획득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기술 권력을 쥔 자들이 이런 주장을 언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주장은 쉽게 퍼뜨리지만 반대하는 주장은 묻어두는, 그
런 행태. 이것이 바로 기술 권력이다.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기술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지금. 성장만이 살 길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지금. 과연 우리가 겪었던 큰일들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저자는 묻고 있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이대로 나가면 우리가 겪었던 감염병이나 기후 재앙보다 더 심한 일들을 겪을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고, 모두가 우 몰려 가는 방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고 한다.
특히 이런 기술 개발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 더욱 극한 상황으로 내몰린 노동자들, 그리고 디지털이 초래하는 환경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고 한다.
지속적으로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한데 저자는 '생태 기술과 공생 기술'을 도입해야 한다고 한다. 기술 개발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방향에서만은 생태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한다. 그의 주장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생태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기 위해 자연-사회 생태계에 걸쳐, 생태 기술과 공생 기술의 문제를 전면화한 채 인공-자연, 생명-기계, 가상-실제, 물질-비물질 사이의 기술 배합 비율을 적정 수준에서 조절하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지구 곳곳에 만연한 기술 독성을 치유할 자율 능력을 우리 스스로 익히는 길이기도 하다.' (25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