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보통 광복절이 되면 대통령들이 축하하는 연설을 한다.
과거를 딛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그렇다고 과거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주로 일본에게는 사과를, 우리는 그 사과를 바탕으로 용서를 이야기하는데...
이번 경축사는 도대체, 누구를 겨냥하고 한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아니 누구를 겨냥했는지가 너무도 명확하다.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
광복절임에도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삼았던 일본에 대해야 역사를 바르게 인식하고, 제대로 된 사과를 하라는 말은 없다. 오로지 일본은 우리의 협력 대상자라는 말밖에는 없다.
후쿠시마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겠다고 선언한 일본, 1급 전범들이 합사되어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봉물을 바치는 일본 수상. 그들에게 대동아공영권을 주장하면서 동양의 나라들을 식민지로 삼았던 과거는 전혀 반성할 역사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쉬울 뿐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그럼에도 식민지였던 나라의 대통령이란 사람이 과거를 모르쇠한다. 과거는 중요하지 않단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과거는 없다. 자신이 생각하는 미래만 있다.
남북 분단의 원인 제공이 바로 식민지였음을. 일본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분단의 제공자임을 생각하지 않고 광복절 축사를 말하다니... 오로지 분단은, 분열은 소수의 극렬분자들 때문이라고 생각하다니...
이제하 시집에 노래로 불린 시들이 많다고 해서 마음이 동했었는데... 그러다 이 시집에 실린 '오는 봄'이라는 시를 보면서, 이런 정말 '조선인들만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고...
오는 봄
각설탕처럼 토막난
하늘을
부지런한 새들이
하나로
얽어매고 있다
조선사람들만 불쌍하다
사다린 양 올라가는
아지랑이를 두고도
통일, 통일이라고만
떠들고 있다
이제하, 빈 들판, 나무생각. 1998년 초판 4쇄. 113쪽.
경축사를 읽어보니, 무섭다. 국내에 이런 반국가세력이 많단다. 민주주의 외피를 쓰고활동하는 반국가세력들. 민주화 운동에 전념했던 이들에게 이념의 그물을 뒤집어 씌운다. 참, 편하다. 종북좌파라는 말 한마디면, 그들이 설 자리가 없고, 그 자리에 자신들이 서면 되니까.
이렇게 그냥, 떠들고만 있다. 아니, 광복절 경축사에서 통일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고 봐야 한다. 북한의 위협만을 이야기하고, 그래서 한미일 공조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광복절 축사인데?
몇 구절을 인용하면 참...
전체주의 세력은 자유사회가 보장하는 법적 권리를 충분히 활용하여 자유사회를 교란시키고, 공격해 왔습니다. 이것이 전체주의 세력의 생존 방식입니다.
공산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습니다.
일본은 이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파트너입니다.
한일 양국은 안보와 경제의 협력 파트너로서 미래지향적으로 협력하고 교류해 나가면서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함께 기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윤석열대통령 2023년 광복절 경축사 중에서)
우리는 통일과 화합을 이루어야 하고, 일본에게는 반성과 사과를 요구해야 하는 광복절 경축사여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분열과 갈등. 그리고 일본에 대해서는 과거는 묻고 함께 갑시다라고 요청하고 있는 연설이라니...
아, 정말 ''한국인들만 불쌍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졌다. 이 시에 나온 조선인을 한국인으로 바꿔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드니.
봄은 아직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