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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나라 독립운동 역사에서 슬픈 학살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슬픈 학살? 이런 말이 성립할 수 있나?
학살은 잔인하다고 표현해야 하지 않나? 하지만 잔인함보다도 슬픔을 느낄 수밖에 없는 사건이 바로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서 일어났다. 소위 말하는 민생단 사건.
스탈린이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들뿐만 아니라, 조선인들을 중앙아시아로 이주시킨 이유가 여럿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조선인들이 일제의 첩자노릇을 하지 않나 하는 의심. 그 의심을 송두리째 없애기 위해서 강제 이주를 시켰다고 하는데...
마찬가지로 민생단이란 단체는 독립운동에서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죽이게 하는 역할을 했다. 나라를 구한다는, 여기에 세상을 구한다는 거창한 명분을 담고 행동한 사람들이 서로를 믿지 못한다? 이는 서로를 죽임으로써 그 믿지 못함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뜻이니...
소설은 김해연이라는 지식인을 서술자로 택한다. 그는 독립운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러니 소위 만철(남만주철도주식회사)에 근무한다. 식민지 시대, 일제에 부역하는 일을 하는 것. 그 일에 그는 잘못을 느끼지 못한다.
그렇게 지내던 그에게 이정희라는 사랑이 찾아오고, 어느날 이정희가 죽었다고, 그 죽음에는 독립운동이 관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랑을 잃고 폐인처럼 지내던 그는 용정에서 간도로 가고, 거기서 이정희의 흔적을 만나게 된다. 새로운 삶을 살고자 했고, 여옥이라는 여인과 다시 사랑에 빠지기도 하지만, 또다시 일본 토벌대에 의해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러나 독립운동을 하는 공산주의 조직에 가담하게 되고, 무장투쟁을 하는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공산주의 사상을 학습하고 무장투쟁을 위한 몸을 만들게 된다. 이때 바로 민생단 사건이 소설에 등장한다.
민생단, 첩자로 일제에 독립군의 활동을 알려주던 역할을 하는 단체라고 여기고, 민생단원을 색출해 제거하기로 한다. 하지만 민생단원이 누구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결국 민생단은 자신들이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상대를 숙청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다.
저자가 민생단원이다, 하면 총살이다. 그냥 죽음이다. 어떠한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이렇게 죽어간 독립운동가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자신과 사상이 다른 사람을 민생단원으로 몰아 처단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음을 소설은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중학시절 뜻을 같이 했던 네 명의 인물들이 어떻게 다른 길을 가고, 죽음에 이르게 되는지를 이정희를 사랑했던 김해연을 통해 하나하나 밝혀지게 된다.
서로를 팔아버리는 이유가 어쩌면 한 여성 때문일 수도 있음을, 자신의 개인적 사랑 때문에 이들은 서로를 죽이기에 이르게 되고...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남은 김해연은 자신의 복수를 하지 못한다. 왜? 그에게는 사랑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 남아 있기 때문에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는, 아이들의 아버지로 살아가는 모습을 본 다음에는 그를 죽일 수 없게 된다.
그는 역사의 흐름에 휘말려 서로 죽이는 관계가 된 친구들과 다른 위치에 있다. 왜냐하면 그는 사랑을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정희를 둘러싼 네 명의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죽이게 되지만, 과연 그것이 사랑일까?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다. 소설에서 사랑을,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김해연뿐이고, 이정희는 그것을 깨닫는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실린 이정희의 편지가 그 점을 잘 보여준다.
바로 세상을 구하려고 뛰어든 사람들, 어떤 사상으로 무장하기 전에 바로 그들을 움직인 것은 사랑 아니겠는가? 그러던 것이 사상으로 인해서 사랑을 잃게 되면 죽음이 찾아오게 된다. 사랑을 잃고 사상만으로 건설한 세상은 천국이 아니라 지옥일 수 있음을, 그런 세상은 만들어질 수 없음을, 김해연이 겪어온 일들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된다.
마찬가지다. 이 세상은 지옥이지만, 이 지옥에서도 천국을 맛볼 수 있음은 바로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계산하지 않는 사랑. 그런 사랑을 본 김해연은 복수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그가 복수를 한다면 그 자신 또한 사랑을 버린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소설은 우리나라 역사에 부끄러운 과거로 남은 민생단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그럼에도 사랑을 잃지 않아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이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이유가 바로 사랑에 있음을, 사랑이 없는 세상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임을, 그 사랑은 집착이 결코 아니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도도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도 개인은 개인으로 살아남아야 함을, 그냥 역사 속에 자신을 묻어버리면 그때 그에게 사랑은 올 수 없음을, 그에게는 오로지 사상만이 남고, 그 사상은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죽일 수 있음을 김해연과 그가 만나는 다른 인물들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된다.
김연수 소설은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그 역사적 사건이 한복판에서도 개인을 중심에 놓고 있다. 앞에 읽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도 그랬는데, 이 소설 역시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도 개인의 사랑을 중심에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정희가 어떻게 죽게 되었을까? 과연 범인은 누구인가 하는 생각에 끝까지 읽어야만 전모가 밝혀지는 소설이기에 흥미진진하게 읽게 되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