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가 X에게 - 편지로 씌어진 소설
존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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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가는 작가다. 존 버거는. 그의 작품을 헌책방에서 만나면 우선 구입하고 본다.. 읽느냐 읽지 않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언젠가는 읽게 되기 때문에.


이 작품은 소설이다. 편지로 씌어진 소설이라고 한다. 편지라는 매체가 지닌 속성은 허구보다는 사실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읽으면서 이것이 과연 소설일까? 사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존 버거의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내용은 단순하다. 이중종신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있는 남자에게 밖에 있는 여자가 보내는 편지 형식이다. 편지를 통해서 바깥 소식을 전하기도 하고,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밖에 있는 여자가 약국에서 일한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약국에서 일하는 사람. 다친 사람을 치유해 주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다친 사람은? 그 사람들은 바로 세계에서 약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자기의 주거지에서 쫓겨난 사람들, 폭력에 시달리는 사람들, 폭격으로 집도 가족도 잃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주인공인 아이다는 보살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들과 연대한다. 그렇게 연대하는 모습을 편지를 통해서 감옥에 있는 사비에르에게 보낸다.


세상 약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연대밖에 없다. 그들은 폭력에 호소하지 않는다. 인간띠를 만들어 헬기나 탱크의 폭력에 맞서는 힘. 그것은 바로 평화를 사랑하는 의지밖에 없다.


아이다가 편지에 쓴 이 구절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지금 우리의 삶은 끝없는 불규칙성에 빠져 버렸어요. 그런 삶을 강요한 자들이 오히려 우리의 불규칙성을 두려워하고 있죠. 그래서 그들은 우리를 몰아내기 위해 담장을 세워요. 하지만 모든 걸 막을 수 있을 만큼 긴 담장은 불가능하고, 어떻게든 돌아가는 길은 있기 마련이죠. 위로든 아래로든.' (216쪽)


이중종신형을 선고받은 사비에르가 무슨 일을 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그렇지만 편지의 내용을 보면 사비에르는 약자들과 연대했을 것이다. 그러한 죄로 감옥에 갇혔을테고. 


그런 그의 모습은 편지에 있는 그가 적어놓은 글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는 신자유주의에 분명 반대하고 있다. 또한 약자들의 편에서 서서 그들이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꿈꾸고 있다. 그런 죄로 감옥에 갇힌다.


하지만 아이다로 인해서, 그는 갇혀 있다고 할 수 없다. 아이다는 약국을 통해서 약자들을 보듬어준다. 


이 소설이 과연 소설로만 그칠까? 우리 역시 기다란 담장에 갇혀 있지 않나? 담장을 만들고 있는 족속들이 있지 않나? 담장을 통해서 눈과 귀를 가리고 저들이 원하는 대로만 하려고 하지 않나? 하지만 다 가릴 수는 없다. 어디선가 새어나온다. 아이다의 말처럼.


우리 역시 위로든 아래로든 길을 찾을 수 있다. 그래, 눈 앞의 길이 장벽으로 막히면 돌아가면 된다. 그 자리에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존 버거 소설을 읽으면서, 그가 소설에서 우리에게 전하려고 하는 일들이 현재진행형임을 생각한다. 우리에게도 진실과 사랑을 가둘 수 있는 장벽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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