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나를 위로하는 밤 - 지친 마음에 힘이 되어주는 그림 이야기 자기탐구 인문학 5
태지원 지음 / 가나출판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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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이 필요한 시대다. 호모 사피엔스를 넘어서 호모 데우스가 되어 가고 있는 시대라고 하지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혼란을 보면 정말로 위안이 필요하다.


마음이 안정이 되지 않는다. 분노와 불안이 나를 감싸고 있다. 제자리 걸음도 아니고, 이건 완전히 뒤로가는 상황이니, 어찌 마음이 편하겠는가.


게다가 사회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살기 편해진 세상이 아니라, 더 살기 힘들어진 세상이 되었다. 재화는 늘어났지만, 불평등은 심해졌고, 민주주의를 이루었다지만, 그것이 서로를 받아들이는 토의나 토론으로 가지 못하고, 오로지 법에 의존하는, '법대로' 공정을 외치는 사회가 되었다.


안전? 과학기술이 발달해서, 인간 생활이 편리해졌다지만, 그만큼 과연 우리 삶이 안전해졌나? 산업현장에서는 여전히 안타까운 죽음들이 생겨나고, 축제 현장에서도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있으니, 마음을 위로해줄 때가 지금이다.


이때 마음에 콕 들어오는 책을 만났다.제목부터 마음에 든다. '그림으로 나를 위로하는 밤'


우선 밤이라는 단어에 끌렸다. 밤, 조용히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때. 많은 것들을 가려서 보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을 보지 않을 수 있는 때. 여기에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동적인 자기에서 정적인 자기로 돌아오는 때.


밤과 캄캄함. 캄캄하다가 불안하다가 아니라 쉬다와 연결이 되는 단어가 '밤'이 아닌가 한다.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때.


밤에 더해서 그림이다. 그림은 정적이다. 움직임이 없다. 이 움직임이 없는 대상을 내가 끌어와 내 맘 속에 담는다.


그림에 내 마음을 담고, 내 생각을 담는다. 움직이지 않는 그림. 밤과 같은 그림에 나만의 무엇을 불어넣는다. 그러면서 그림 앞에서 나는 고요해진 나를 만난다.


그러니 그림으로 나를 위로할 수밖에 없다. 밤과 그림이다. 어떤 그림? 정할 필요가 없다. 정해지지도 않는다.


어느 순간 자신의 눈에, 마음에 들어오는 그림이 있다. 그 그림을 가민히 보고 있으면 그림에 자신의 마음을 담고, 또 그림으로 마음의 위안을 얻게 된다.


저자도 그랬다. 그런 과정을 글로 담아냈다.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생각을 꼭 따라갈 필요는 없다. 자신만의 장소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두고 그림을 보면 된다. 


그림에 자신을 담으면 된다. 그러면 위안을 받는다. 가령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와 '올랭피아'를 보자. 이 그림을 이야기하면서 작은 제목을 '부적응의 세계를 건너는 법'이라고 붙였다.


부적응의 세계. 남들은 다들 적응을 잘하는데 난 왜? 이런 경우가 있다. 그러나 과연 부적응이 남들에게 뒤떨어진 것일까?


마네는 당시 화단에 부적응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두 그림은 그를 온갖 비난에 시달리게 했다. 그러나 그가 그림을 포기했던가. 남들이 원하는 대로 그림을 그렸던가. 아니다. 그는 그냥 당시 사회에 적응하길 거부했을 뿐이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을 뿐. 그렇다고 그가 세상 전체로부터 버림받았는가? 아니다. 마네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대에 부적응의 대명사였던 그 그림들이 지금은 명화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다. 


그러니 저자가 한 말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힘껏 노력해보는 건 나쁜 일이 아니다. 시간이 부적응의 무게를 해결해주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노력으로도 적응할 수 없는 일이 간혹 존재하는 법이다. 부적응이 반드시 당신의 잘못은 아니다. 당신 내면의 규칙과 기준이 완전히 잘못되거나 틀린 것도 아니다. 살아가다 보면 나와 맥락과 문법이 맞지 않는 세상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부적응의 상태는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시기와 세상을 건너는 일. 그저 그런 일일 뿐이다.' (281-282쪽) 


난 열심히 노력했는데 잘 적응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 저자처럼 이렇게 생각해도 좋겠다. 아니면 다른 그림들을 보면서 위로를 받아도 좋겠다. 


그림을 본다는 행위 자체는 이미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다른 세계로부터 자신을 떼어내 그림에 자신을 담는다는 것이니까. 움직임이 없는 그림에 마음의 움직임을 불어넣는다는 의미니까. 


그렇게 그림을 본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위로하는 행위가 된다. 다양한 상황, 다양한 고민, 다양한 그림들이 나와서 읽으면서 그림이 아니라 글을 통해서 위안을 받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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