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는 이번 호를 여는 글에서 '마법'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마법? 우리가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일들이 이루어졌을 때 마법처럼 일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만큼 마법이라는 말은 현실을 넘어섰다는 말과도 같다. 현실이 어려울 때 우리는 마법을 기대한다. 이 현실을 잊고, 이 현실보다는 나은 현실을 원할 때 마법처럼 그런 현실이 다가오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마법이 아니다.


  마법 같은 일은 이상하게도 힘 센 사람에게는 잘 이루어지만 힘없는 사람들에게는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작 마법은 힘없는 사람들에게 필요한데...


그래서 신데렐라에서는 마법의 힘으로 신데렐라가 무도회에 참여한다. 옛이야기든, 솔닛이 쓴 [해방자 신데렐라]든 그 점에서는 변화가 없다. 다만 마법 그 후가 다르다. 마법으로 자신이 바뀌었는데 그것에만 만족하면 마법은 언제든지 풀린다. 힘없는 사람에게는 그렇다. 12시가 되면 마법이 풀리듯이. 


하지만 마법임을 알고 마법을 받아들일지, 아니면 자신의 현실로 돌아올지를 스스로 결정하면 마법은 지속될 수도 있다. 그것이 바로 마법이다. 순간적으로 잊게 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현실을 바꾸는 힘. 


빅이슈 이번 호 편집자가 말한 '마법'과 다른 의미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곧 '핫체리 엄지척(오후 14-17쪽)'을 읽으면서 안 좋은 쪽으로 마법을 부리는 존재를 발견했다.


언론이다. 그렇다. 강한 존재에게는 약하고, 약한 존재에게는 강한 그런 언론. 아니면 좋겠지만, 지금 언론의 행태는 앞에서 말한 것에서 벗어났다고 보기 힘들다. 특히 노동자들의 파업을 보도하는 내용에서는.


그러니 잘 읽어야 한다. 글자만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 주장을 뒷받침하는 통계자료만을 믿어서도 안 된다. 이 글에 나온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에 관한 보도를 예로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들은 임금을 30% 인상하라는 요구를 했다고 한다. 30%, 엄청난 인상률이다. 그런데 이들이 예전에 임금 30%를 삭감당했다는 기사는 없다. 30% 임금을 삭감당하고 몇 년 지내오다 회사가 조업을 잘하고 있으니 다시 30%를 올려달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터무니 없는 임금인상 주장이라는 논조가 많다.


이대로라면 30% 인상도 원점으로 돌아온 것이지 임금이 인상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이런 점을 지적한 언론은 별로 없다. 더 꼼꼼하게 기사를 살펴야 한다. 그런데 이런 통계들을, 사실들을 언론을 통해서가 아니면 일반인들은 알기 어렵다. 언론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데...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남들보다 더 꼼꼼하게 사실관계를 따져야 한다. 역사적으로 어떻게 되어 왔는지도 살펴야 하고. 그들이 '체리피킹(cherry picking: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을 가져와 주장을 뒷받침하는 행위)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 체리피킹은 마법을 부릴 수도 있다. 통계를 통해서 사실인 양 제시하지만 약자층을 옭아매는 고리로 이용할 수 있으니, 약자에게 체리피킹은 자신들을 옥죄는 마법일 수밖에 없고, 강자에게는 그들을 옭아매는 마법일 수 있다.


그런 마법은 필요없다. 참고로 이 글을 쓴 저자는 '체리'라는 말을 빌려와 제목을 달았다고 한다. '체리'?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지 않은가. 참 나, 이 체리가 이렇게 우리 사회를 뒤흔들 줄이야.


여기에 '생존이 곧 투쟁이다(46-51쪽)'라는 글을 읽어보면 옥천에 사는 이주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진정 마법이 필요한 존재는 바로 그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고, 그런 노력들이 마법처럼 자신들의 생활을 바꾸기를, 자신들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기를 바라고 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마법끼지 필요하지는 않다. 그냥 그들을 사람으로 바라보면 된다. 나와 같은 사람.


이 글에 이런 말이 나오는데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 우리들의 마음이, 태도가 마법처럼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언니가 베트남에서 온 물건이 아닌데, 인구를 유지하는 역할을 할 뿐인 물건 취급을 하는 거죠. 언니가 '나는 물건이 아니야.'라고 말해요. 자유롭게 인간으로 살고 싶은데, 그걸 뒷받침해주는 정책이 없어요. 실상 언니를 이곳으로 부른 것은 한국 사회였음에도 언니가 그 '필요'를 벗어나는 순간 쉽게 버리는 거예요.'(51쪽) 


이런 데서 마법이 필요하다. 통계를 감추거나 필요한 부분만 유리하게 쓰는 것이 아니라. 


이번 호는 읽을 글이 많다. '돌봄의 기술자들'이라는 꼭지에 실린 '통역사, 케어러, 부모의 딸, 그리고 부모의 부모'라는 글도 여러 생각을 한다. 그들에게도 마법이 필요함을. 아니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에 마법이 필요함을 느끼게 하고...


열심히 하루하루를 마법처럼 살아가는 빅판의 이야기도 좋고. 힘들게 살지만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는 여성 홈리스 이야기에서도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마법이 필요함을 생각한다.


그들에게 마법이 아니라, 그들을 바라보는 또는 그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에게, 우리 사회,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사람들에게 마법이 필요함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