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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정석 ㅣ 김동식 소설집 7
김동식 지음 / 요다 / 2019년 3월
평점 :
짧은 소설. 꽁트라고 해도 좋을 소설들. 짧은 소설의 묘미는 바로 반전에 있다. 독자가 상상하지 못한 결말을 내는 일. 독자가 상상할 수 있는 결말이 나온다면 그 소설은 잘 썼다고 할 수 없다. 특히 짧은 분량에 사건을 다루는 소설은.
김동식 소설은 읽으면서 결말을 어떻게 낼까 생각하는 재미가 있다. 이미 이 작가의 작품을 여러 편 읽었는데, 특이한 결말이 많았기에, 이번 소설집을 읽으면서도 결말을 생각한다. 중간을 넘어서까지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사건이 일어난다. 복선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정도는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결말에 이르면 아, 이런!!! 하는 생각이 드는 결말이 나온다.
그 재미다. 그 재미를 위해서도 김동식 소설은 읽을 만하다. 이런 예로 '신혼여행 중에(112-127쪽)'라는 소설을 들 수 있다. 다른 소설들도 그렇지만, 이 소설은 상대를 속이는 묘미, 또 독자에게 자신의 고정관념을 깨는 재미를 준다.
신혼여행 하면 무엇을 떠올리는가? 행복, 즐거움. 그리고 대다수는 남-녀가 결혼하고 떠나는 여행이라는 생각을 먼저 한다. 이 소설은 우주로 신혼여행을 떠난다. 그렇다면 사건은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과는 다른 사건일 수밖에 없다.
낯선 외계인이 접근한다. 친절하다. 선물을 준다고 한다. 외롭게 여행을 했으니 함께 식사하면서 이야기하자고 한다. 의심 많은 한 사람은 내켜하지 않는다. 그런데 활달하고 사교적인 한 사람은 외계인을 반긴다. 그들은 외계인과 식사를 하면서 영원히 살 수 있는 법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듣는 도중 한 사람은 깨닫는다. 외계인이 한 이야기는 외계인 자신의 이야기라고. 결말은? 외계인은 자신의 계략이 성공했다고 믿는다. 신혼여행 중인 사람들 역시 자신들이 한 대비책이 옳았다고 여긴다. 둘 다 자신들이 잘했다고 믿는다. 그런데, 결말은 반전이다. 우리가 신혼여행에서 떠올리는 그림, 성별이 아니다. 멋진 결말이다. (소설을 읽어야 이 소설의 묘미를 느낄 수 있어서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제목이 된 '살인자의 정석'도 마찬가지다. 살인자의 정석이라니? 무슨 뜻인지 막연히 '살인자의 기억법'을 원용하고 있지 않나 했더니, 결말은 다르다. 반성하지 않는 살인자. 우리나라 법정에서 그렇게 많이 받았다는, 아니 범죄자들이 썼다는 반성문. 그 반성문으로 인해 감형을 받은 경우가 많다는 보도도 있었다.
[반성의 역설]이란 책을 보면 반성을 강요하면 결국 더 큰 범죄자가 된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형식적으로, 판에 박힌 반성문을 써내면서 어떻게든 자신의 형량을 줄이려고 하는 범법자들이 많았는데, 이 소설은 그들의 그런 반성문을 소재로 삼아 펼쳐진다.
그런데, 소설의 결말 부분에 이르기 전까지는 그 점을 알 수가 없다. 결말 부분에서 반전이 일어나는 그 장면을 보고 형식적인 반성문이 얼마나 가식적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반성문보다는 진정으로 반성하고 사과하고 행동을 바꿀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되고.
그렇다. 이것이 바로 김동식 소설이 주는 즐거움이다. 생각하지 못했던 반전. 그 반전으로 인해 한 발짝 더 나아가는 생각.
'나는 수염이다'는 소설... 기가 막히다. 윤회를 바탕으로 한 소설. 인과응보다. 그런데, 인과응보란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한다. 어떻게?
사실, 윤회가 정말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한다. 종교에서 말하는 천국과 지옥도 실제로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고. 그렇다면 사람들이 막 살지는 않을테니. 그래서 진짜든 아니든 사람들이 사후세계가 있다고 믿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공상을 하기도 한다.
'지금-여기'에서 잘 살기 위해. '지금-여기'에서 잘 산다면 '다음-거기'에서도 잘 살 수 있다고 믿을테니, '다음-거기'에서 잘 살기 위해서라도 '지금-여기'에서 잘 살 수밖에 없다.
김동식 소설은 그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환경오염을 시킨 인간이 무엇으로 환생할까? 그 점을 생각하게 해도 좋을 소설인데, 손톱으로 환생한 인간도 있다고 하니... 윤회가 있다고 가정하고, 하늘(땅 속) 법정- 그 법정이 땅 속에 있는지, 하늘에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지만 - 에서 잘못에 대해서 어떤 윤회 판정을 내릴지, 안 좋은 행동, 또는 범죄 행위를 두고 환생을 시킬 때 어떤 존재로 환생시킬지 이야기해 보는 시간을 가져도 좋을 듯하다.
이 소설에서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수염으로 환생한다. 안 좋은 행위를 저지른 탓에 칼에 몸을 잘리는 고통을 겪게 되는, 수염 주인공이 죽을 때까지 그 고통을 겪어야 하는 벌을 받는 인간. 그는 그 인간의 빠른 죽음을 바랄 수밖에 없다. 그때까지는 고통을 받으면서 살아야 한다. 그런데, 그는 깎이는 고통을 받지 않는다. 행복할까? 왜? 글쎄.
그는 분명 수염으로 환생했다. 그런데 어떤 존재의 수염으로 환생했을까? 읽으면서 아랍인? 수염을 깎지 않는 사람, 조선시대 사람? 많은 생각을 했는데, 결말에서 아, 그렇구나!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벌이 수염으로 환생한 거였지? 이 결말이 맞네.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존재의 수염으로 환생했는지는 상상하든지, 아니면 소설을 읽든지 해야 한다. 상상했던 결말과 소설이 같다면,, 그 또한 즐거운 일이 될테니)
더 많은 소설이 있지만, 그 소설들은 직접 읽어야 더 재미가 있다. 이렇듯 김동식 소설은 짧은 분량 안에 생각지 못한 결말, 그리고 우리 사회를 환기하는, 우리들의 삶을 생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야말로 촌철살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소설을 읽는 이유이기도 하고, 재미라고 하겠지만.
지루하지 않고, 요즘 같이 빠른 속도로 변해가는 시대에 김동식 소설은 빠르게 전개되고, 예기치 않은 결말로 인해서 우리들에게 소설을 읽는 즐거움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