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통 안의 소녀 소설의 첫 만남 15
김초엽 지음, 근하 그림 / 창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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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고 맨 뒤에 실린 작가의 말. 가슴을 때린다. 그래, 이런 세상이 더 좋은 세상이겠지. 온갖 최첨단 기술로만 이루어진 사회보다는. 


"반짝반짝 빛나는 미래 세계도 좋지만, 그보다 아무도 외롭지 않은 미래를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


많은 과학 업적들이 우연을 통해서 발견이 된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우연히 공기오염을 줄이는 기술을 발견한다. 분진형 나노봇, 에어로이드. 공기를 정화시키는 아주 작은 로봇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그것이 일상에서 쓰이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는다. 그러면 되었나?


아니다. 부작용이 있다. 어떤 기술도 모든 사람을 완벽하게 만족시키지 못한다. 이렇게 공기 오염 없이 많은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사회에서 하필이면 그 기술에 이상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이 나타난다. 소설 속 주인공 지유가 그렇다.


많은 사람이 기술발전으로 행복한 삶을 살지만, 지유는 오히려 통 안에 갇혀 살아야 한다. 이는 남들과 함께 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지유가 기껏 통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때는 비가 내릴 때. 비가 내려서 에어로이드가 녹아내릴 때.


남들은 우산을 쓰고 다니지만, 이때만큼 지유는 우산 없이, 통 밖으로 나와 거리를 거닐 수 있다. 남들이 우산 없이 다닐 때는 통 안에 있어야 하고, 남들이 우산을 쓸 때 지유는 우산 없이 거닐고 싶어한다.


이렇게 지유는 다른 사람과 함께 걸을 수가 없다. 함께 할 수 없는 신체조건이다. 자, 이런 사회에서 지유는 행복할까? 생명을 이어가겠지만, 지유는 남들로부터 소외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를 과학 소외라고 하면 어떨까? 또는 기술 소외라고... 온갖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거기에서 배제되는 사람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소외되는 사람들. 그러나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수의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소수의 불편함, 어려움은 무시되기 일쑤다.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마치 시혜를 베풀듯이 지유에게 통을 선물하는 업체도 있지만, 이는 그들의 기술을 알리는 목적도 있고, 또 함께가 아니라 당신도 살 수 있는 세상임을 보여주려는 의도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지유에게 다른 존재가 다가온다. 노아. 복제인간이라고 해야 하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없는 존재다. 노아 역시 갇혀 있다. 이런 노아와 지유가 함께 산책할 수 있을까?


"이 동네를 너랑 같이 산책해도 재밌을 텐데. 그렇지?" (54쪽)


남들과 함께 하지 못한 지유의 마음이 잘 드러난 말이다. 하지만 이들은 함께 산책할 수 없다. 둘 다 소외되어 있지만, 다른 사람들 시선에 노출되어 살아가도 괜찮은 지유와 다른 사람들 눈에 띠면 안 되는 노아이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시대에 둘 다 소외되어 있기는 하지만, 소외의 정도는 다르다. 그렇게 소외되는 사람들 사이에도 차이가 있다. 이 차이가 그들을 함께 하지 못하게 한다. 왜냐하면 함께 하는 순간, 어느 한 존재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철저하게 배제되기 때문이다.


소설은 그 점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둘은 다른 방법으로 함께 한다. 지유는 노아에게, 노아는 지유에게 선물을 준다. 그 선물이 비록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함께 있지는 못해도 그들이 함께 하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소외된 존재들의 연대. 그것이 그들을 견디게 해주는 힘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아주 짧은 이 소설은 미래 사회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상이 어떤 세상일지 생각해 보라고. 지금 기후 위기가 심각하다. 위기가 아니라 재앙임을 몸으로 체험하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자, 이 재난을 소설에서처럼 과학기술로 해결하려고만 하면 될까? 


그런 방법이 다시 지유나 노아와 같은 존재를 만들어내지 않을까? 그런 세상이 과연 바람직할까. 그래서 작가의 말이 가슴에 더 와닿는다.


"반짝반짝 빛나는 미래 세계도 좋지만, 그보다 아무도 외롭지 않은 미래를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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