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르렁, 으르렁"


  이성의 통제를 받지 않고 나오는 소리다. 자신의 감정을 충실히 담은 소리다. 머리에서 나온 소리가 아니라 가슴에서, 심장에서 나온 소리다.


  가식이 없다. 꾸밈이 없으니, 솔직하다. 솔직하기 때문에 한 순간에 불꽃이 일기도 하고, 금방 식어버리기도 한다.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해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


  특히 사랑에서는 더욱 그렇다. 감정을 따른다. 아니, 감정에 따를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태. 내가 제어할 수 없는 내 심장이, 내 몸을 움직인다. 


시집에 첫번째로 실린 시 '심장으로 걸어 볼래'에서 말하고 있다. '오늘부턴 좀 멋지게 걸어 볼래'라고... 멋지게 걷는 일, 그것은 바로 심장으로 걷는 일이다. 그래서 '심장으로 걸어 볼래'라 하고 있다.


이런 사랑은 자신의 모두를 걸고 있다. 그때는 전부다. 그것 말고는 없다. 그러므로 무엇을 해도 사랑을 벗어날 수 없다. 이 시집에 단 한 번 '춘향'이가 나오는데, 그 춘향이가 햄버거와 함께 나오는 점이 현대시라고 할 수 있지만, 춘향이가 누군가.


사랑에 전존재를 건 사람 아닌가. 다른 것은 보지 않고 오로지 사랑으로, 사랑에게 전력질주한 여인 아니던가. 그런 춘향이가 바로 청소년 아닌가. 이팔청춘.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춘향이의 사랑은 죄일 수 있다. 특히 변사또처럼 기득권을 대변하는 사람에게는 사랑은 죄다. 자신이 허락하지 않은 사랑은 더더구나. 


과연 사랑이 죄일까? 청소년의 사랑이 죄일까? 죄가 아니다. 그렇다면 기독교를 인용하자. 사람이 태어났다는 사실 자체가 죄다. 원죄다. 우리는 원죄를 안고 태어났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원죄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불교 식으로 이야기한다면 윤회의 업에서 벗어나야 한다. 


삶 자체가 죄라면, 사랑은 당연히 죄다. 그런데 이 사랑은 죄를 벗어나게 해주는 죄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사랑이라는 죄를 지어야 한다. 사랑이라는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 득시글한 사회. 행복한 사회가 아니라 불행한 사회다.


청소년시집이라고 하지만, 이 시집에는 그야말로 '사랑'의 난장판이 펼쳐지고 있다. 시집 곳곳에서 '으르렁, 으르렁' 소리가 들리고 있다.


살아 있다. 살아 있는 그런 소리들이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 '죄의 발견'이란 시.


죄의 발견


열일곱 살이 되고 나니 / 놀라운 일이 한두 가지가 / 아니다 가장 놀라운 일은

사랑을 발견하는 일, 그깟 일이 / 뭐라고 하면서 거들먹거리는 / 너는 누구나 인생은 초보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 아마추어 / 참 놀라운 일이다 / 사랑을 발견하는 일이 

곧 죄의 발견과 맞물려 있다는 / 사실 그러니까 그 애를 / 사랑하게 된 뒤 알았다 나는

괴물이 되었다는 걸 다행이라면 / 아름다운 괴물이란 사실 / 한순간 사랑이 바닥났다는 걸

열부 났네, 하고 비웃는 / 너 또한 아마추어 / 그 애에게 다 주고 남은

사랑이 없는 나는 걸핏하면 / 으르렁대지 선생님도 / 눈에 뵈질 않지 / 고아였으면 싶었지

그러니까 나도 / 아마추어 / 그러나 나는 결심했지 / 프로가 되기로, 그 애에게

몽땅 바친 사랑을 누룽지처럼 / 조금씩 훔치기로 했지 / 부모님과 선생님께 조금씩

나눠 주고 옆집 개에게도 / 아량을 베풀기로 했지 / 참 놀라운 일이다

사랑을 꺼내는 열쇠가 / 죄라는 건 죄를 꺼내는 열쇠가 / 사랑이라는 거짓말 같은

사실은,


김륭. 사랑이 으르렁, 창비교육. 2019년. 113-115쪽.

 

이 시를 읽어보라. 청소년에게 사랑을 하라고 하고 싶지 않은가. 청소년들이 사랑에 자신을 걸어봐야 그 사랑이 다른 사람, 다른 존재에게도 갈 수 있다.


온몸, 온마음을 바쳐 사랑에 빠진 경험이 없는 사람, 아마추어다. 그 사랑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기만 하는 사람도 아마추어다. 


사랑을 나눌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한 사람에게만 빠져보았던 죄를 경험했던 사람이 프로가 된다.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도 청소년기에는 '심장으로 걸어' 봐야 하고, 사랑이라는 죄에 빠져봐야 한다. 


그래, 우리 청소년들이 마음껏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 그것이 바로 우리를 사랑하는 길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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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7-23 2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몹시 관심이 가는 시집이예요
읽어봐야겠어요.^^

kinye91 2022-07-24 07:44   좋아요 0 | URL
마음에 와 닿는 시들이 많아서 좋아요. 청소년들 마음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