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이 청소년시집은 이야기가 있다. 인물이 있고, 갈등, 사건, 그리고 해결이 있다. 해결? 물론 해결은 안 된다. 그냥 넘어갈 뿐이다.
많은 일들이 일어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역설. 학교란 사건이 일어나도 이상하게 별다른 일이 없이 굴러간다. 이 시집에 나오는 탐정 역할을 맡은 화자도 그렇게 느낀다. 또한 사건 당사자로 나오는 인물들 역시 그렇다.
모두들 사연이 있다. 그 사연이 해결되면 좋겠지만, 사연은 사연으로 그들 가슴 속에 묻혀 있을 뿐. 그 사연을 끄집어내 풀어내게 하는 어른들이 없다.
교사도 부모도 하지 못하고 있다. 오로지 할 수 있는 사람은 친구들뿐.
교실에서 도난 사건이 일어난다. 범인으로 지목되는 학생은 정해져 있다. 의심이 가는 상황. 방범 카메라를 돌려보니 빈 시간에 교실에 들어간 학생은 두 명. 한 명은 모범생이라 할 수 있고, 한 명은 문제아라고 할 수 있다.
누가 범인으로 지목당할까? 보나마나 뻔하다. 물어보지 않아도 범인으로 누가 지목될지 알 수 있다. 또 그렇게 처벌이 이루어진다.
이런 과정이 시를 통해 나온다. 한 편의 시가 아니라 여러 편의 시가 이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래서 시를 읽으면서 소설을 읽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학교에서 일어난 절도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는가 하는 점도 볼 수 있고. 그럼에도 이 청소년시집에서는 공부라는 틀에 갇힌 학생을 만날 수 있다.
자유롭게, 자신만의 꽃을 피우고 싶지만 꽃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화단 밖에 핀 꽃') 상태에 머무는 학생들도 많다.
그래서는 안 된다. 화단 밖에 있다고 꽃이 아닌가. 꽃은 꽃일 뿐이다. 이 시집 처음에 실린 시. 마음을 때린다. 부모가 자녀에게 해야 할 일은 자녀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찾아가게 하는 일이다.
제목과 내용이 역설적으로 연결된 이 시... 이렇게 하지 말기를 바라며.
친절한 엄마
엄마는 나를 위해
발품을 팔아 새장을 사고
새장에 어울리는 그네를 사고
삼 년 치 모이를 사고
새장을 걸려고 이곳저곳에 못을 박았지
아침이면 새장에서
새소리가 아닌 고양이 소리가 나는데도
엄마는 새소리가 아름답다며
삐뚤어진 새장을 바로 걸어 놓았지
나를 위해 엄마는
아무나 기웃거리지 못하게 한다며
새장 문에 자물쇠를 달고
열쇠는 강물에 던져 버렸지
김현서, 탐정동아리 사건일지, 창비교육. 2019년. 10쪽.
삼 년만 친절해도 미칠 지경인데, 6년도 모자라 12년, 아니 대학까지 16년을 새장 속에 넣어두는 부모도 있지 않을까. 그것이 과연 친절일까? 생각해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