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의 밤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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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소설이다. 긴데, 한번 읽으면 빨려들어간다. 사건이 사건을 일으키고, 결말이 어떻게 될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페스트라는 감염병이 민게르라는 섬에서 발생한다. 여러 민족들이 함께 살고 있는 오스만제국령인 섬, 민게르. 


이곳에 파견된 의사는 피살이 되고, 중국으로 가기로 했던 파키제 술탄과 그 남편 누리가 민게르 섬으로 방향을 돌려 가게 된다. 섬에서는 페스트가 창궐하지만, 그 페스트를 대하는 방식은 민족에 따라, 또 종교에 따라 다르다.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이나 행위를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은 방역 당국의 조치들을 거부하고, 어기고, 또한 방역당국에서도 여러 민족들의 상황에 따라서 방역조치를 일관되게 취할 수가 없게 된다.


이런 상황, 낯설지가 않다. 팬데믹이 선언된 상황에서도 방역 수칙을 위반하는 집단이 있는 모습은 현대에도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여기저기서 뚫린 방역은 결국 섬을 페스트가 휩쓸고 가게 만든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감염병에 대응하려고 했지만, 결과는 참혹할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방역에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소설에서는 민게르 섬에서 여러 정치권력과 종교, 그리고 민족들이 갈등하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감염병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이러한 감염병을 이용해서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이루려는 사람들도 있고.


감염병이 소설을 이루는 한 축이라면 민게르라는 작은 섬이 독립국가로 가는 과정을 페스트와 연결시키는 과정이 한 축이다. 여기에 터키 사람인 작가 오르한 파묵이 지니고 있는 오스만제국에 대한 생각도 드러나고 있고.


여러 말이 필요없는 소설이다. 읽으면서 다양한 집단이 어떻게 페스트에 대처하고, 이용하는지를 소설을 읽어가면서 따라가기만 해도 된다. 그러면 지금 코로나19로 인해 겪었던 일들이 자연스레 겹쳐지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아니라 사람들의 안전,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이 방역을 주도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그런 과정은 무력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 길고 어려운 과정을 거치겠지만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조치들을 취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게 한다.


위에서부터 일방적으로 내려지는 지침으로는 방역이 성공할 수 없다. 죽음이 아무리 두렵다고 하더라도 자신들이 평생동안 지녀왔던 신념과 위배되는 행위를 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하물며 종교적 관습이 관계되었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


또 일이 잘 해결되지 않을 때 희생양을 찾는 모습도 소설에 나오는데, 지금 시대에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여기에 방역을 한다고 봉쇄를 하는 모습. 민게르 섬을 봉쇄해버리는 오스만제국과 영국, 프랑스 등의 강대국 모습은, 코로나19로 국경이 폐쇄되고, 출입국을 금지하던 현대 우리들의 모습과도 겹쳐진다.


방역이 잘 안되었을 때 겪게 되는 혼란에 대해서도 소설에서는 잘 묘사하고 있고... 이렇게 파티제 술탄의 편지에서 촉발되어 소설을 썼다고 작가가 이끌어가는 이 소설에서는 감염병이 한 나라에 끼치는 영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길지만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의 상황과 관련이 지어지기 때문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에 나오는 민게르 섬이 겪었던 그런 과정을 우리는 이제는 겪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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