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적으로 이 시집 시들은 내용이 쉽다. 머리 속에 잘 들어온다. 그만큼 시 속 상황을 이해하기 쉽다. 시 속 상황을 내 삶과 연결시키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연결시킬 수가 있다.


  시인이 세상과 동떨어진 사람이 아니듯이, 시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시들이 어디 사람과 사회와 떨어져 있는 내용을,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이야기를 하던가.


  시는 사람과 사회를 시 속에 담고 있을 때, 그렇게 사람과 사회를 시에서 잘 보여줄 때 우리들 마음에 다가온다. 그 담는 방법이 하나가 아니라 시인에 따라서 다양하기에 시는 하나이면서도 여럿이 될 수 있겠지만.


그 표현의 다양성 속에서 공통점을 찾아내고, 사람을, 사회를 찾아내어 자신의 머리만이 아니라 마음 속으로 들이는 일, 시를 읽는 일이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시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시를 읽게 해야 한다. 읽지 않는 시는 독자에게 다가올 수 없기 때문이다. 당의정이라는 말을 할 필요는 없지만, 이 시에 나오는 연약한 과육 속에 단단한 씨를 품고 있어야 한다. 시는. 그래서 말랑말랑한 느낌을 받지만, 시를 읽고 나서는 무언가 단단함을 얻은 느낌을 받도록 해야 한다.


시인이 이야기한 방향과 다르지만, 이 시집 제목이 된 '포도알이 남기는 미래'는 '포도알 속에도 씨가 있다'는 시에 나오는 구절에서 따왔다.


어쩌면 이 시는 바로 시를 이야기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시를 읽는 순간, 또는 시를 읽는 의미가 이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으니...


'포도알은 껍질이 벗겨지는 순간 깊고 아득한 목구멍 속으로 사라지지만 / 결코 그게 다가 아니라며 제 생의 응집들을 뱉어놓는다 // 포도알은 포도씨를 꼭 물고 있었다 / 포도씨는 포도알이 남기는 미래다' ('포도알 속에도 씨가 있다' 부분, 40-41쪽)


시 역시 마찬가지다. 읽는다고 끝나지 않는다. 포도씨처럼 무언가가 마음 속에 자리를 잡는다. 그것은 바로 시가 우리에게 남기는 미래다. 그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시집에 있는 시들을 읽어가면 열매를 먹으며 씨를 남기는 행위를 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이 시집엔 어려운 말들이 없기에 쉽게 읽을 수 있다. 그렇다고 마냥 쉽게만 그냥 술술 소화가 되고마는 시들은 아니다. 무언가를 남긴다. 그 남김... 소화되기 전에 곱씹게 만드는 무엇. 그것이 있어야 좋은 시가 된다.


특히 이 시, 시는 시대를 넘어서 보편적인 무엇을 우리에게 전해준다는 생각을 하게 한 시다. 동화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서 따온 소재지만, 내용은 전혀 다르다. 시 역시 동화처럼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


  옛날 숲속에 자칭 잠자는 미녀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어느날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나 그녀를 깨울 때까지는

  계속 잠만 자야 하는 것인 줄 굳게 믿고 있었다


  잠을 깨운다

  벌거벗긴 채 닫힌 문 밖에 껍질 벗긴 자두모냥 서 있는 다섯살짜리 아이의 흐느낌이,

  한 달째 놓쳐버린 줄풍선인 여자아이들이,

  하루도 쉬지 않고 늘 담장에 핀 소담한 꽃이었던 양순한

  포장마차 내외가 단속에 밀려 겨우내 차디찬 가지와 줄기로 얼어붙어 있는 것이,

  등 따스운 잠을 깨운다


  하지만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깨어나지 않는다

  그녀의 잠을 깨우기에는 무언가 2%가 모자란가보다

  그녀는 아직 먼 나라의 꿈을 꾸는가보다 그 꿈은 좀처럼 깨어나기 싫은 꿈인가보다

  걸어잠근, 작지만 아늑하고 깊은 방인가보다


  '영등포 슈바이처'라 불린 한 의사의 씁쓸한 죽음이,

  석면공장 근로자들의 20여년 잠복기 석면폐증이,

  딸 옆에서 유서를 쓴 한 대학강사의 돌연한 죽음이,

  포근한 잠을 깨운다


  이제 잠자는 미녀의 숲은 철거되어야 함을

  더이상 그녀를 재워줄 숲은 없음을

  잠을 자다가 그대로 숲그늘의 고락과 함께 묻혀버릴 수 있음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그녀가 너무 오래 누리고 있는 평화를, 혹독함의 왕자여, 처참히 흔들어 깨워다오!


이선영, 포도알이 남기는 미래, 창비. 2009년. 98쪽-99쪽.


깨어나야 한다. 왕자를 기다려서만 안 된다. 왕자처럼 궁궐에서 다른 사람의 고통을 모르고 지내는 존재에 의해 깨어나서는 안 된다. 이미 미녀가 잠들 숲조차 파괴되지 않았던가. 사람들의 고통을, 사회의 고통을 외면하고 눈 감고 단잠에 빠져들면 결국 자신조차도 개어날 수 없게 된다.


그러니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깨어나야 한다. 깨어나서 자신만의 숲속에서 나와서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한다. 시도 마찬가지다. 자신만의 숲에서 잠을 자서는 안 된다. 깨어서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한다.


그것도 고통으로 신음하는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한다. 그래야 깨어남이고, 그래야 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시들이 포도가 포도씨를 남겨 미래를 만들어가듯이 시도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 깨어나 함께 할 수 있다.


그런데 혹시 우리가 지금 잠자는 숲속의 미녀처럼 잠자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드니, 이것은 무슨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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