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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물레 ㅣ 환상문학전집 33
어슐러 K. 르귄 지음, 최준영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기발한 상상력이다. 읽으면서 처음에는 영화 '인셉션'을 생각했다. 다른 사람의 꿈 속으로 들어가 생각을 훔친다는 발상의 영화. 그런데 계속 읽어가면서 그 영화와는 다름을 알게 됐다. 이 소설은 개인의 꿈이 사회, 세계를 바꾸는 이야기이고, 과연 그렇게 사회를 바꾸는 일이 바람직한가 하는 질문을 하게 소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소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생각을 훔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세계를 바꾸는 신의 자리에 선 인간의 이야기가 된다. 1970년대에 쓰인 소설에 이런 상상력이 나오다니.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읽다보니, 유발 하라리가 쓴 [호모 데우스]가 떠오르게 됐다.
그래 '호모 사피엔스'를 넘어서 이제는 '호모 데우스'가 되려는 인간들의 모습. 어쩌면 이 소설은 '호모 데우스'의 모습을 미리 경험하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
자, 어떤 인간에게 신의 능력이 부여된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그 능력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여기서 또다른 영화 '브루스 올 마이티'가 생각난다. 신의 능력을 받은 사람. 그 영화는 덜 심각했지만, 이 소설은 심각하다.
세상에서 인류를 파멸시키기도 하고, 외계인을 불러오기도 하니까. 조지 오르는 자신이 세계를 바꾸는 꿈을 꾼다는 사실을 안 다음에 잠 자기를 두려워한다. 잠을 자면 꿈을 꾸게 되는데, 이 꿈을 자신이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그렇게 인간으로서 살아갈 마음을 지녔기에, 신의 위치로 올라설 생각이 없었기에, 온갖 약들을 복용한다. 그러다 하버라는 박사에게 치료를 받게 된다. 자, 하버는 처음에 오르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그의 말이 사실임을 알게 된다.
오르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아는 사람이 한 명 더 늘었다. 이제 어떻게 될까? 하버는 치료에만 전념할까? 아니다. 그는 그 능력을 쓰기를 바란다. 오르를 조종한다. 자신이 원하는 세상으로...
이 지점에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 빠질 수 있는 위험이 나타난다.
'권력을 향한 의지의 특징은 정확히 성장이다. 성취는 성장을 해소시킨다. 따라서 권력을 향한 의지는 그것의 충족과 함께 증대하므로, 충족된다는 것은 오로지 더 큰 충족을 향한 한 걸음일 뿐이다. 점점 더 막대한 권력을 얻을수록, 그것을 향한 욕구도 점점 더 막대해진다. 하버가 오르의 꿈들을 통해 휘두르는 권력에는 아무런 가시적인 한계가 없었으므로, 세계를 향상시키고자 하는 그의 결심에도 끝이 없었다.' (204쪽)
권력의 속성이다. 한 사람에게 절대 권력이 쥐어지면, 부패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 여기에서 나온다. '나 아니면 안 돼라는 생각'에 빠져, 자신만이 할 수 있고, 또 자신만이 옳다는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그 함정 속으로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추종자들을.
그러나 인간은 신이 아니다. 인간이 세상을 자기 멋대로 바꿀 권리는 없다. 오히려 인간은 이 세계의 일부다. 이 세계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조지 오르는 그 점에서 하버 박사가 자신을 조종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세계를 창조할 권리가 없으니... 조지 오르는 이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지, '호모 데우스'가 아니라고.
'우리는 세상에 맞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세상 속에 존재해요. 상황의 바깥에 선 상태로 상황을 관리하려고 하는 것은 효과가 없어요. 정말 효과가 없어요. 그건 삶을 거스르는 거예요. 박사님이 따라야 하는 길이 있어요. 세상이 어때야 한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상관없이 세상은 존재해요. 당신은 그것과 같이 존재해야 해요. 세상을 놔둬야 한다고요.' (216쪽)
이것이 바로 우리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이어야 한다. 신의 자리에 올라서려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으로 세상에서 살아가려는 인간. 조지 오르는 그런 인간이고, 하버는 신의 자리에 오르려는 인간이다. 조지 오르를 통제하는 것을 넘어 직접 자신이 꿈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권력의 맛에 취한 사람이 그 맛을 버리지 못하게 된다. 이때 오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버 박사를 멈추는 일. 그리고 완전한 세상이 아니라 뒤죽박죽인 세상, 복합적인 세상에서 살아가는 일.
소설 중간에 만나는 여인 '헤더 르라세'를 만나 다시 시작하는 결말 부분에서 우리는 우연으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자신이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어가는 삶을 살아야 함을 알게 된다.
누군가가 만든 세상,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세상이 아니라, 다양하고 복잡한 세상에서, 얽히고 설킨 세상에서 실타래를 풀어가는 일은 자신이 해야만 한다고, 그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삶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하늘의 물레'라는 제목이 잘 이해가 안 되었는데, 물레를 '선반'으로 바꾸면, 그 선반은 다른 물품을 만들어내는 틀을 제작하는 도구니, 결국 '하늘의 물레'는 세상을 창조하는 일이라고 바꿀 수 있다.
그리고 세상을 누가 창조하냐? 신처럼 전지전능한 능력을 지닌 특정 존재가 해야 하느냐, 아니면 불완전한 인간들이 그 세상 속에서 살아가면서 세상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느냐 하는 생각을 하는 소설이다.
하늘은 결코 인자하지 않다고, 노자가 말했다고 했던가. 이 소설에서도 이런 노자의 말이 인용되고 있는데, 하늘이 인자하지 않다고 하는 말은, 하늘이, 신이 인간의 삶에 전적으로 개입해서 자신의 뜻대로 살게 하지 않고, 인간들이 자기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즉, 기쁨만 있는, 제 뜻대로만 되는 세상이 아니라 기쁨과 슬픔, 성공과 실패, 사랑과 실연, 용기와 두려움 등 수많은 감정들, 또 수많은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을 겪으면서 살아가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는 사실.
꿈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인물을 설정하고, 그것이 자신의 의지가 아닌 무의식인 꿈을 통해서 자신도 예측할 수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상상력. 그 능력을 버리고 싶어하는 사람과 받아들여 사용하고 싶어하는 사람의 갈등을 통해 우리들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하는 소설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이런 상상력을 1970년대에 소설로 표현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소설. 물론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설정이지만, 그 설정을 통해 우리들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하고 있으니... 좋은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