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정 하면 개인이 지니는 서정성과 사회의식을 시에 잘 융합시킨 시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몇 안 되는 시를 읽었을 뿐이지만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란 시와 '꽃덤불'이란 시를 읽으면 개인의 서정과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이 시 속에서 잘 어우러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시들을 읽은 기억이 있기에, 그리고 몇몇 구절들이 머리 속에 남아 있기에 신석정 유고시집이 헌책방에 나왔을 때 망설이지 않고 구입할 수 있었다.


  적어도 실망을 안기지는 않을 시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고, 최근에 부안을 다녀왔는데, 신석정 시인이 부안 출신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그의 생가를 들르지 못한 아쉬움도 있기 때문이었다.


유고시집 제목이 [내 노래하고 싶은 것은]이다. 내가 노래하고 싶다는 말은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는 말인데, 이는 개인 서정에 해당한다. 그렇다고 개인적 감정을 단순히 토로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신석정 시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내 감정에서 우리들 감정으로 나아가게 되는데, 그것은 나만 잘사는 사회가 아니라 함께 잘사는 사회여야 하기 때문이다.


내 노래하고 싶은 것은


피 묻은 발자욱이사

새삼 돌아볼 겨를도 없다

아아라한 만첩청산을

만첩청산을 굽이돌아

철 철 철 흘러가는 

저 푸른 강물을 보리로다.


가슴 깊이 간직해 둔

눈물겨웠던 이별 또한

구름과 더불어 왕래하는

구김살 없는 저 학두루미의

학두루미의 노래에 부쳐

하늘 멀리 보내도 좋으리라.


다만 오는 날을 위하여

벅찬 설계를 가다듬어야 하거늘

오염된 문명을 믿을 수는 없다.


그 문명 속에 허덕일 수도 없다.

소슬한 솔바람 소리로

상처 입은 마음을 달래리라.


별들의 참한 이야기

잇따라 들려오고

꽃그늘에 오고 가는

너그러운 햇살이 지키는 속에

내 노래하고 싶은 것은

우리 부신 꿈과 생시뿐이로다.

                                           -전북일보 1973.1.1.


신석정 유고 시집, 내 노래하고 싶은 것은. 창비. 2007년. 130-131쪽.


벌써 50년 전에 쓰인 시... 지금 우리 상황에서 다시 이 시를 생각해 보면 과연 우리는 지금 무슨 노래를 부르고 싶을까?


우리가 거쳐왔던 안 좋았던 과거들을 뒤로 하고, '벅찬 설계'를 하고 있는지, 또 '상처 입은 마음을' 달래고 있는지...


'별들의 참한 이야기 / 잇따라 들려오고 / 꽃그늘에 오고 가는 / 너그러운 햇살이 지키는 속에'라고 그렇게 우리에게도 봄은 오고 있는지...


우리들이 살아가야 할 '부신 꿈과 생시'를 노래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본다. 


여전히 우리가 불러야 할 노래는 바로 이것이다. 우리들 삶의 환희... 그런 세상. 그래서 이 시에서도 개인의 마음을 넘어서 우리로 나아가게 된다.


나만 잘사는 세상이 아니라 우리가 잘사는 세상. 그렇게 과거를 딛고 미래의 희망을 노래할 수 있는 세상.


봄... 우리 사회에도 진정 이런 봄이 왔을까... 그래서 우리는 시인이 원하던 것과 같은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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