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캐넌의 세계 환상문학전집 5
어슐러 K. 르귄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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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귄의 소설을 다시 읽기 시작한다. 환상적인 배경을 통하고 있지만, 결코 환상적인 이야기가 아닌 소설.


[로캐넌의 세계]는 르 귄이 쓴 [바람의 열두 방향]이란 소설집에 실린 '샘레이의 목걸이'를 확장해서 쓴 소설이다. 이 소설에도 '샘레이의 목걸이'는 프롤로그에 목걸이란 제목으로 실려 있다. 이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미지의 행성으로 찾아온 로캐넌이 펼치는 이야기가 바로 이 소설이다.


그는 샘레이를 만난 뒤에 미지의 행성을 탐험하기로 하고, 이 행성에 와서 지낸다. 지내던 어느날 행성 연합에 반란을 일으킨 세력이 그의 우주선을 파괴하고 동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 행성에 살고 있는 종족들을 몰살하거나 노예로 삼는다. 가공할 만한 현대 무기를 앞세워서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죽이거나 쫓아내거나 노예로 삼는 행위.


로캐넌은 그런 행위를 이렇게 비판하고 있다.


'적어도 세 종 이상에, 모두 기술적으로 낮은 수준에 있는 이 행성의 고도 지성 생명체에 대해서는 모두 무시하거나 노예로 삼거나 절멸시키거나 중에 제일 편한 길을 택할 것이다. 침략자들에게는 기술만이 문제가 될 뿐이므로.' (68쪽)


이렇게 알려지지 않은 행성에 살고 있는 생명체들에 대한 존중은 없다. 함께 살아가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그들의 생활 방식을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들의 기술력을 믿고 그들을 종속시키려 할 뿐이다.


이런 세력이 점점 많아지면 평화란 없다. 오로지 전쟁뿐이다. 그렇게 행성 연맹은 해체되어 가기 시작한다. 그런 해체를 로캐넌의 세계에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행성에 대한 침입에 대항하기 위해 로캐넌은 영주인 모지언과 그 수행원들과 함께 침략자들의 기지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이 소설은 그런 모험담이기도 하지만, 이들이 긴 여정을 떠나면서 만나게 되는 일들이 바로 우리가 모르는 세계나 사람들과 처음 만났을 때 어떤 위험이나 또는 어떤 환대를 받게 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기지를 찾아내지만, 이미 깨지기 시작한 행성 연맹의 평화가 지속되리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다. 로캐넌은 돌아갈 곳이 없다. 이 행성에 머무르기로 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이름을 지닌 별을 지니게 된다.


이름, 막대한 기술력을 지닌 존재들은 무엇에든 자신들이 알 수 있는 이름을 붙이려든다. 이 이름이 기존 사회와 갈등을 일으키든, 기존 사회에 필요가 없든 상관이 없다. 그러니 소설의 끝부분에서 이 행성에 '로캐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서술은 평화로운 공존이 이루어지는 행성 연맹이 아니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로캐넌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이 역시 강자의 이름짓기에 불과하다. 그 행성을 자신들의 체계 속으로 끌어들이는.


사실 '아메리카'라는 이름도 그 대륙에 살던 원주민들이 붙인 이름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그들이 부르던 이름으로 그곳을 지칭할 수도 있어야 하는데, 힘이 있는 자들의 언어로 이름을 붙이는 일들... 결국 이름은 권력이다.


이름은 존재를 자신에게 가져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로캐넌은 이 말이 우리에게 이름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나는 이 땅에서 새로운 나무를 보고 네게, 혹은 너는 잘 대답해 주지 않으니까 야한이나 모지언에게 나무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지. 이름을 알기 전에는 마음이 불편하거든.' (169쪽)


이렇게 이 소설을 읽으며 압도적인 기술력을 발휘하는 외계에 대항하는 이 행성의 사람들, 특히 날아다니는 말을 타고 다니는(그리폰의 후예라고 하나?) 그들의 모습에서 영화 '아바타'를 연상하게 된다.


이 영화 역시 [로캐넌의 세계]와 비슷한 세계관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외부에서 온 존재로 인해서 위기를 벗어나고, 그 외계 인물이 아바타들의 세계에 동화되는 모습이 바로 그렇다. 이렇게 보면 또 다른 문명에 대한 침탈과 그에 대항하는 사람이야기는 영화 '늑대와 춤을'에서도 볼 수 있다.


아메리카 대륙에 이미 살고 있던 원주민들을 이주민들이 어떻게 몰아냈는지를 생각해 보면, 이 소설은 새로운 세계에 도달한 이주민들이 그 세계를 어떻게 파괴해 왔는지를, 그것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깨닫게 한다.


르 귄이 쓴 이 소설 [로캐넌의 세계]는 우리가 낯선 곳에서 낯선 존재를 만났을 때 그들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먼 미래의 이야기도, 실현 불가능한 공상 속 우주 이야기도 아닌, 바로 지금 우리 삶에서 우리들이 지녀야 할 삶의 자세를 생각하게 해주는 그런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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