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배달시키는 일이 많아졌다. 도로 곳곳에서 배달 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다.
속도, 속도, 빠르게 빠르게... 조금만 늦어도 배상을 해야 하는 상황. 무조건 빨라야 한다. 배달 사정은 고려하지 않는다. 도로 상황이 어떻든, 교통 규칙을 지켜야 하든 말든, 오로지 빠르게 제 시간에 배달이 되어야 한다. 그게 규칙이다. 반드시 지켜야 할.
그러나 우리가 얼마나 빠를 수 있나? 빛보다 빠를 수 있나? 빨리 빨리를 외치다 제 삶의 여유를 잃고 오로지 빠름 속에서만 존재하고 있는 현실이 아닌가.
현재 느리게 살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사람들, 그들에게는 여유가 있다. 그렇게 빨리 빨리를 외칠 필요가 없는데도 그들은 이윤을 위해서 빨리 빨리를 외친다. 자기가 아니라 남에게. 빨리 하지 않으면 먹고 살기가 힘든 사람들에게 자기 이익을 더 남기기 위해서 또는 자기가 좀더 편하기 위해서.
그래서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은 더 빨리 움직여야 하고, 먹고 사는 것이 남아 도는 사람들은 더 남아돌게 하기 위해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빨리 움직이게 한다. 자신은 느긋하게 있으면서.
빨리 움직여야 살 수 있는 사람과 느리게 움직여도 살 수 있는 사람들이 같은 세계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들은 같은 공간에 있지만 서로가 만날 수 없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지 않을까? 배달 음식을 시켜도 직접 얼굴을 마주 보면서 받는 경우보다는 이제는 배달 음식이 왔다는 문자만 남기고 문 앞에다 놓고 가게 하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은가. 계산이야 예전에는 직접 배달하는 사람에게 주었지만, 지금은 배달을 시키는 순간, 배달료까지 다 계산이 되니, 얼굴을 마주 볼 일이 없다. 같은 공간이지만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존재들.
주창윤 시집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특히 1부'너무 늦었다 역으로 가는 쿠팡 트럭' 속에 있는 시들을 읽으며. 줄여서 '배민'이라고 부르는 '배달의 민족'이라는 배송 업체, 거기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배민 라이더'에 대한 이야기들과, 로켓 배송이라고 자랑하는 쿠팡에 속한 배달하는 사람들 이야기.
그들은 배달하는 사람, 빨리 움직여야만 살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배달 받는 사람들은 느리게 움직여도 되는 사람. 같은 나라에 살고 있지만 살고 있는 세계가 다른, 그들이 처한 세계는 우리 은하와 안드로메다만큼이나 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들은 안드로메다로 배달을 나간다. 갈 수 있을까? 안드로메다가 우리 은하에서 가장 가까운 은하로 알려져 있다고 하지만, 빛의 속도로도 위키백과를 찾아보니 250만 광년이 걸린다고 한다. 시속 1만 광년으로 달려도 250년이 걸리는 곳. 그런 곳에 도달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이들이 집으로 돌아와 편안히 쉴 수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들이 안드로메다에 배달을 빠르게 해도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배달해야 하는 저쪽과 쉴 수 있는 이쪽의 거리. 안드로메다와 지구의 거리... 그 거리에서 빠르게, 빠르게, 삶을 소진해야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시집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특히 제목이 된, '안드로메다로 가는 배민 라이더'와 '안드로메다에서 오는 배민 라이더'를 읽으면 마음 한 켠이 찡해 온다.)
결국 안드로메다는 그들이 도달할 수 없는 세계가 된다. 다른 존재들이 살고 있는 다른 곳. 결코 지금처럼 살아서는 갈 수 없는 곳. 이만큼 사람들 사이에 거리가 있다. 그래서 주창윤의 이 시를 읽으면서 빠르게 배달하는 사람들의 고충도 읽혔지만, 거기에 더해 이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도달할 수 없는 삶이 있음을, 그런 삶은 개인의 노력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음을.
사회의 노력이 함께 해야만 안드로메다와 여기의 거리가 좁혀지고, 안드로메다가 갈 수 없는 세계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갈 수 있는 세계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누구는 아무리 빠르게 움직여도 자기 삶을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고, 누구는 가만히 있으면서 다른 사람을 빨리 움직이게 하는 세상. 그들의 빠름으로 자기 안락을 추구하는 세상이 바람직한 세상은 아니고 그것이 개인의 책임은 아니니까,
제목이 된 시를 감상하면 더 좋다. 이 시에 나오는 기계인간 테레사가 한 말이 실현되지 않도록 하려면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사회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책임을 지는 그런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 은하와 안드로메다 은하처럼 멀리 떨어져 있는 삶들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안드로메다로 가는 배민 라이더
머나먼 길이다 청량리역에서 안드로메다까지,
별의 여왕에게 영원히 배고프지 않는 마법의 라면을 배달하러
페가수스 별자리를 향해 일만 광년의 속도로 질주한다.
나보다 더 빨리 달리는 외계인 폭주족들,
향하는 곳이 암흑성운인 줄도 모르고
무한대로 들어간다 큰 코끼리 별과 반딧불 별 사이
스타벅스 커피숍을 지나면
낙태된 자매 별들이 무중력 상태로 떠다닌다.
소행성 벨트를 따라 흘러나오는 미세먼지와
서울에서 뿜어낸 가스가 모여 잉태한
신성新星들 사이에 있는 분식점 은하정에서
라면 한 개와 이천 원짜리 김밥 한 줄을
나는 성급히 먹는다.
천공의 성 라퓨타 계단 아래서 마구 떨어지는 운석들이
우주 아래에 하얗게 쌓인다
기계인간 테레사가
"내 별이 그랬던 것처럼 당신 별도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는군요"라고 말할 때,
나는 이미 밤이 없는 행성을 지나
낮이 없는 행성으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주창윤, 안드로메다로 가는 배민 라이더. 한국문연. 2021년. 18-19쪽.
이 시뿐만이 아니다. 2부에 있는 '펀치 머신, 헐歇!' 시들. 3부에 있는 '사우나 출애굽기'에 시들도 좋다. 한 시집에 이렇게 마음에 드는 시들이 많기도 드문데, 이 시집에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거울에 비추듯이 보여주는 그런 시들이 많아서 마음 속에 콕콕 박힌다.
펀치 머신에서는 이리저리 치이는 현대인의 삶을, 그리고 지친 몸을 싼 값에 쉬게 할 수 있는 사우나 풍경을 통해서 빠름 속에서도 쉼이 있어야 함을 느끼게 해주고 있다. 이렇듯 지금 우리 사회 현대인의 모습이 이 시집에 오롯이 들어 있다.
이 시집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의 삶이 어디에 있도록 해야 하는가? 삶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물을 수 있는가? 개인의 삶에는 사회의 책임이 따라야 하지 않는가? 내 빠름, 내 편안함을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더 빠름을, 더 힘듦을 요구하는 사회가 바람직한가?
덧글
너무 감사하게도 시인에게서 이 시집을 받았다.
시인이 시인의 말에서 한 말
'언어의 안개를 명징하게 걷어내고 싶었다. / 날 것을 명쾌하게, / 표면적으로, / 그냥 입에 녹듯이,'라고 하고 있듯이 내게 명쾌하게 다가온 시집이다.
선물을 받은 시집이지만, 시에 대한 감상은 오로지 내 몫이라는 사실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