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론보다 이 시 하나가 페미니즘에 대하여 잘 말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시집 제목이 된 '여왕코끼리의 힘'도 페미니즘을 잘 보여주고 있지만...
노자의 [도덕경]에서도 여성성을 강조하고 있고, 그러한 여성성을 부드러움과 일치시키고, 그것이 다시 비어있음과 포용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이 시집에서도 그러한 여성성에 대해서 다룬 시들이 많다.
강함을 추구하는 사회는 배제를 전제로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약한 것들을 배제하고, 또는 드러나지 않게 하는 사회. 그래서 강함은 딱딱함과 연결이 되고, 딱딱함은 포용성 없음으로, 다양성보다는 단일성, 획일화를 추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도덕경에서도 그런 말이 나온다고 기억하고 있는데, 단단함은 곧 죽음이라고. 이걸 우리 생각에 연결시키면 사고의 경직성은 생각의 죽음이니, 이런 사람들이 권력을 잡으면 그 사회는 다양성을 용납하지 못하는 사회가 된다고. 그리고 이런 사회는 여성성을 추구하는 사회와는 다른 사회라고.
이 시집에 실린 '연금로(練金爐)'라는 시를 보면 여성성이 추구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그러한 여성성이 실현되지 않는 세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 수 있다. 어떤 이론서보다도 더 명확하게 이이해할 수 있게 된다. 시를 보자.
연금로(練金爐)
여자가 여자에게로 면면히 물려주는 유품입니다
티라노사우루스의 이빨이 들어갑니다
칭기즈칸의 창, 나폴레옹의 칼,
히틀러의 전자포, 루스벨트의 핵폭탄,
식민지에 복제 인간을 대량 사육하고 싶은
남자의 채찍이 들어갑니다
수천만 년 불뚝이는 육식성 근육질들
무쇠 가마 안에서 물엿 끓듯 오래 달여져
펄죽펄죽, 퍽, 퍽,
연금로 안에서 공기 방울을 터트립니다
뎅글뎅글한 헷살들이 터져 나옵니다
붉은 해저궁 같은 연금실 공간에
순금 노을이 햇살을 굴리며 여울질 때
거름망을 통과한 사내아이들이 걸어 나옵니다
순한 쌍떡잎 언뜻언뜻 비치며
......................................그럼에도
역사는 전환점에 다다르지 못한 것 같고,
들춰 보면 늘 고통의 벽화입니다
퉁겨져 나올 듯 어깨뼈가 불거진 아프간 아이들
조막손이로 줄줄이 태어나는 체르노빌 아이들
철조망을 붙잡고 사라진 지평선을 내다보는
킬링 필드의 아이들, 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아이들
나는
연금술 이론 자체를 엎어 버릴까, 말까, 생각합니다
이미 내벽이 얇아지고 군데군데 헐어 버린
오래된 연금로를 깃털 업는 어깨 위로 치켜들고
조명, 여왕코끼리의 힘. 민음사. 2008년 1판 2쇄. 40-41쪽.
'연금술 이론 자체를 엎어 버릴까, 말까, 생각합니다'라고 절규하는 시인의 목소리. 이는 아직도 세상은 이 시의 앞부분에서 말하고 있는 것들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그래서 이렇게 힘들고 혼란스럽다고...
하지만 이 연금로가 완벽하게 작동하지 않는다고, '내벽이 얇아지고 군데군데 헐어 버'렸다고 버려서는 안 된다. 고쳐야 한다. 이런 연금로 없는 세상은 사람이 살 수 없는 세상이 될 수밖에 없으므로.
시인도 그 점을 안다. 그러니 이 시집 제목이 바로 힘센 남성성을 거느리고 평화를 유지하려 한다는 내용을 담은 '여왕코끼리의 힘'이지 않겠는가.
다만, 아직도 강함과 배제와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우리에게 연금로가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들이 연금로를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 버리게 했다간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생각해 보라고...
시 앞부분에서 제시했던 엄청난 폭력성들을 계속 겪을 것이냐고, 우리 후손들에게 그런 세상을 물려줄 것이냐고? 시인의 이 시는 어떤 이론보다도 더 단순하고 명확하게 우리에게 '여성성'이 중요함을 생각하게 한다.
(물론 이때 여성성은 생물학적인 여성이 아니라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여성성을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