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선택한 시집.
한때 테트리스라는 게임이 유행했었다. 레고 블록 같은 여러 모양의 막대들을 빈 자리에 맞추는 게임.
그 막대들을 여러 방향으로 바꿀 수 있었는데... 카멜레온은 보호색으로 유명한 동물이니... 둘이 어떻게 연결이 될까 했더니, 변화다. 아니 이 시에서는 변신이다.
그다지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지는 않다. 변화나 변신이나 자신이 지녔던 과거의 모습과는 달라진 모습을 이야기하는데, 변신이라고 하니까 왠지 안 좋은 쪽으로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시집 제목이 된 시를 읽어보면 그런 생각이 옳았음을 알게 된다.
테트리스와 카멜레온
컴퓨터 오락인 테트리스를 할 때마다
변하는 세상의 모습 한눈으로 보지
키를 누를 때마다 자유자재로
변신, 변신, 변신을 시도하는 블록들
변신, 변신을 거듭하며
벽돌담 쌓듯이 척척 아귀가 맞는 블록들
나도 그들 닮을 수는 없을까
푸른 빛 보호색으로 감싸
내 자신 위장시킬 수는 없을까
완전무결하게
플러그 뽑힌 채로 마음의 버튼 누르기만 하면
우리를 슬프게 하는 세상의 모습과 우울한 생각들도
변신, 변신, 변신을 시도
내 마음은 기쁨
내 마음은 사랑
내 마음은 평화
철철 넘치는 내 마음은 자유
한때 우리들 세계의 전부였던 신념과 철학도
변신, 변신, 변신을 시도
자본주의꽃처럼 피어나
달콤한 열매를 맺을 수는 없을까
테트리스 테트리스 테트리스
카멜레온 카멜레온 카멜레온
차정미, 테트리스와 카멜레온. 푸른숲. 1994년. 28-19쪽
세상이 변함에 따라 변하지 않고 버티는 사람도 있지만, 세상의 변화에 빠르게 발 맞추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적응하면서 잘산다고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을 보면서 시인은 자신도 변신하고 싶다고 하지만, 이는 반어다. 그런 변신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세상의 모습과 우울한 생각들'에서 시인은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시인의 변신은 그런 생각들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데에 있다. 신영복 선생이 한 말처럼 시인은 어리석게도 세상을 바꾸려고 한다. 그리고 어리석은 사람때문에 세상은 변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 시에서 변신은 세상을 바꾸지 않는다. 세상에 자신을 맞춘다.
신영복 선생의 말을 다시 빌리면 세상에 자신을 맞추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지만, 그런 사람은 낮은 곳에서 신음하는 사람의 신음소리를 듣지 못한다. 오로지 자신의 부귀와 영달만을 추구할 뿐이다. 이런 지혜로운 사람들은 변신의 귀재다. 그리고 변신의 귀재들이 넘치는 사회에서는 힘없는 사람들은 더 힘들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들은 변신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형식적인 민주화를 실질적인 민주화로 착각하고, 이제는 그런 민주화 운동은 할 필요가 없다고 많은 사람들이 변신에 변신을 거듭했다.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이 지금까지도 우리나라 정치계를 좌우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우리나라 정치계에서는 지혜로운 사람들만이 모여 있으므로... 그 지혜로 시류에 맞게 변신들을 잘해왔으므로. 변신의 귀재들만 모였으므로, 그들은 자본주의꽃처럼 피어났고, 열매를 맺었던 것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 세상은 얼마나 변했는지.. 그들이 세상을 얼마나 바꾸었는지 생각해 보자. 그들은 자신을 바꾸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세상을 바꾸는 데는 그다지 관심이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시를 읽으면서 그렇게 변신의 귀재들이 모여서 세상을 바꾸었나,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나? 시인은 그런 질문을 한다는 생각을 했다.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고... 그 점을 알아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