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 뒤라스가 펼쳐 보이는 프랑스판 ‘부부의 세계’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장소미 옮김 / 녹색광선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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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서 부부가 된다고 한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해로한다고 한다. 그렇게 사랑을 전제로 부부를 이야기 한다. 언제까지 변치 않을 사랑을 간직해야만 하는 관계.


당위다. 의무다. 상대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그래야만 부부관계가 유지된다고. 세월이 흘러 사랑이라는 감정이 사라졌다고 왜 함께 사는지 모른다고 느낄 때도 부부는 사랑으로 맺어졌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소위 '쇼윈도 부부'라고 해서 유리창 안에 전시되어 보여지는 부부처럼 살아가기도 한다. 이 경우에 사랑은 없다. 그리고 부부 간에 영원히 지속되는 사랑도 없다. 부부 간에 상대에게 무한히 헌신하는 사랑도 없다.


무한한 사랑은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사랑, 신이 피조물들에게 주는 사랑이 있을 수 있다고 하지만 이 경우는 예외로 치고, 자, 부부들 간에 사랑이 어떤 의미일까? 어떻게 지내야 함께 평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위기를 겪는 부부 두 쌍과 이미 아내와 사별한 식료품점 주인, 그리고 자식을 잃은 노부부, 여기에 두 쌍의 부부 모두의 친구가 등장한다. 부수적인 인물로 가정부가 등장해서 사랑을 하는 모습도 보이지만 이 소설에서 가정부의 사랑은 부부의 사랑을 강조하는 역할에 그치고 만다.


이탈리아 휴양지로 여름 휴가를 떠나온 다섯 친구. (사라/자크, 지나/루디 두 쌍은 부부고 다이아나만 남편이 없다) 이들은 더위에 지쳐 권태로움에 빠진다.


늘 다투는 모습을 보이지만 서로를 떠나보낼 수 없는 부부인 지나/루디 부부는 이 소설에서 중심을 차지하지 못한다. 이들의 다툼은 결정적인 위기로 치닫지 않기 때문이다.


위기로 치닫는 부부는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서로가 서로에게 데면데면해지고 있는 사라/자크 부부다.


한 남자의 등장으로, 흔들리는 사라. 그리고 그를 지켜보는 자크. 사랑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 그렇지만 육체적 욕망에 굴복하는 것 역시 사랑이 아니라는 생각.


소설은 '사라'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어쩌면 사라는 우리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부부 생활을 하면서 흔히 겪게 되는 일, 그런 일을 겪어가는 사람. 사라.


누가 부부가 서로를 가장 잘 안다고 하겠는가. 이 소서에서는 이런 말이 나오는데,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부부가 갖고 있는 서로에 대한 지식, 아마 그게 제일 형편없는 지식일걸." (52쪽-다이아나의 말)


아마, 자신이 부인에 대해, 남편에 대해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겠지만 어쩌면 그것이 오만일 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 어느 순간 배신당했다는 느낌을 받고 서로에 대한 증오로 치닫는 관계가 될 수도 있다는 것. 


아무리 다 이야기한다고 해도, 감출 수 있고 또 감춰진 무엇이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하고, 그것을 굳이 알려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 그렇지 않고 상대에 대해 모든 것을 알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실행하는 순간, 


"어쩌면 오래된 사랑이 우리를 그렇게 악의적으로 만드는 건지도 몰라. 위대한 사랑의 황금 감옥 말이야. 사랑보다 우리를 더 옥죄는 감옥은 없지. 그렇게 오랜 세월 갇혀 있다 보면 세상에서 가장 선량한 사람까지 악의적인 사람이 돼 버려." (295쪽 - 루디의 말) 


이런 말처럼 되어버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부부는 서로에게 갇혀 있는 관계다. 그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 갇힘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씩 무뎌지는 관계. 사랑이 없어지는 관계가 아니라 새로운 사랑을 만들어 가는 관계.


"세상에 서로가 서로에게 안 갇혀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90쪽 - 자크의 말)

"커플로 사는 건 피곤한 일이야. 어느 커플이든." (263쪽 - 자크의 말)


피곤하지만, 사실 자신의 전 존재를 건 모험이 바로 결혼 아니겠는가. 상대와 함께 살기로 한 것, 나와 남이 합쳐져 우리가 되는 관계. 그런 관계를 인정하고, 그 관계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말할 수 있다면 그들 부부는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해로할 수 있게 된다.


"세상의 어떤 사랑도 사랑을 대신할 순 없어, 그건 어쩔 도리가 없는 거야." (237쪽 - 자크의 말)

"사랑엔 휴가가 없어.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아. 사랑은 권태를 포함한 모든 것까지 온전히 감당하는 거야, 그러니까 사랑엔 휴가가 없어." (306쪽 - 루디의 말)

"그게 사랑이야. 삶이 아름다움과 구질구질함과 권태를 끌어안듯, 사랑도 거기서 벗어날 수 없어." (306쪽 - 루디의 말)


평생을 살아가면서 처음에 느꼈던 사랑이 평생을 지속하리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그 사랑을 만들어가는 관계. 처음 느꼈던 사랑에 더하기를 하는 관계. 상대를 구속하는 사랑이 아니라 상대와 함께 하는 사랑. 


어쩌면 이 소설은 부부의 사랑 형태를 보여주면서 부부의 관계를 이어주는 것이 처음 만났을 때 번쩍하는 황홀한 감정에서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처럼 소소한 일상에서 함께 하는 관계임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주인공들이 소설의 말미에 에트루리아 고분에 있는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을 보러 가기로 하는 장면에서 그런 점을 느낄 수 있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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