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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의 현재적 기원 - 거대 농축산업과 바이러스성 전염병의 지정학
롭 월러스 지음, 구정은 외 옮김 / 너머북스 / 2020년 7월
평점 :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장면이 많다. 팬데믹에 빠져 있는 지금, 이 책은 어쩌면 우리의 현재를 알려주고 있는 책이기도 하겠다.
그것도 이 책에서 제시한 대안을 지금도 거부하고, 순간적인 대증요법만으로 바이러스에 대항하려고 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백신이 나오면 일상 생활이 가능해지리라 생각했다. 치료제가 곧 나온다고 희망에 차 있기도 했다. 어떤 전문가는 70%정도가 백신을 맞으면 집단 면역이 형성될 거라고 했다. 그런데 70% 접종 완료는 계속 올라가 지금은 80% 이상이 접종 완료를 했어도 집단 면역은 생기지 않았다.
치료제는 이제 막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 효용에 대해서는 의문이고... 그런데 이렇게 바이러스만을 대상으로 하는 치료법이, 대응책이 효과가 있을까 이런 의문을 지니고 있었다.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이 책이 해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코로나19가 나오기 전에 나온 책인데, 그동안 우리가 겪어 왔던 감염병들에 대해서 이런 경고가 있었음에도 우리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자책을 한다.
그렇다고 백신이나 치료제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 이 책의 저자도 그걸 인정하고 있다.
단기적으로 감염병 발생을 억제하면서 소농들에게는 공정하게 보상을 해야 한다. 가금류의 국경 무역은 규제를 강화해야 하나.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백신과 항바이러스제를 무료로 제공하고 방역도 도와야 한다. 빈국의 동물보건 인프라를 망가뜨리는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종료해야 한다. (44쪽)
인플루엔자의 문제는 구조적이며 정치 체제에 깊숙히 박혀 있다. 바이러스는 공장 문을 넘어서 확장되는 인과관계 때문에 더욱더 복잡해진다. (94-95쪽)
만약 각국 정부가 정치적 의지를 가지고 강제적으로 동물성 인플루엔자를 막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단기적으로는 소농들에게 살처분에 따른 정당한 보상을 해 주어야 한다. 국경을 넘나드는 가축 무역 규제도 잘 정비해야 한다. 지금은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는 가축 질병 감시를 의무화하고, 재정이 충분한 정부 기관이 이를 맡아야 한다. 농장 노동자들과 세계 빈민들에게는 백신이나 항생제를 무상으로 지원해야 한다. 빈국의 동물보건 인프라를 망치는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중단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다 알고 있듯이 산업적 가축 생산을 끝내야 한다. (99쪽)
저자도 이렇게 개별적인 치료 노력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만 거기에만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광범위하게 농업 산업의 변화를 꾀하는 것은 인플루엔자와 다른 병원체들의 확산을 멈추는 여러 단계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또 다른 단계로, 가금류의 교차감염이 일어나는 농지에서 인플루엔자 변종의 원천인 철새들을 떼어내야 한다. 그러려면 세계의 습지와 야생의 물새 서식지를 되살려야 한다. 세계 공중 보건 역량도 다시 세워야 한다. 빈곤과 영양실조, 인플루엔자를 포함한 감염병 등으로부터 빈곤층을 구하기 위해, 당장 필요한 반창고라도 만들어 두자는 이야기다. 유행성 인플루엔자이든 팬데믹이든 독감은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의 경우 한 명에게 위협이 된다면 그것은 또한 모두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 (102쪽)
백신이나 치료약만 쳐다봐서는 안 된다. 어떤 상황에서는 오히려 백신이나 치료제가 전염병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 그럴 때에는 한 걸음 물러서서 과학의 인식론과 모델들을 폭넓게 생각해 보는 편이 질병 전체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상상력이 없는 것도 때로는 죄가 된다. 어떤 병원균이 새로 생겨나는 데에 우리가 모종의 역할을 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111쪽)
자연을 상품으로 바꾸고, 질병에 대한 생태학적 회복력을 떨어뜨리고, 가축과 병원균이 세계를 이동하게 만드는 것은 자본에 의한 생산주기다. (300쪽)
이처럼 저자는 사회구조적인 면, 정치적인 면을 살펴야 한다고 한다. 지금처럼 지구가 한 세계로 묶여 있는 때에는 더더욱 그런 관점이 필요하다. 우리의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다. 한 나라에서 발생한 감염병은 한 나라에서 그치지 않는다. 한 나라에서 발생한 감염병은 곧 전세계로 퍼져 나간다. 그러니 이런 감염병이 발생할 환경에 대해서, 경제 구조에 대해서, 정치적 역학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나는 새로운 병원체를 식별해 낸다고 하더라도 조기 발견이 반드시 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감염증은 뒤늦게야 포착되기 때문에, 질병의 출현을 촉진할 가능성이 높은 환경이 무엇인지를 규명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177쪽)
집약적 축산업은 조부모 대에서부터 자연선택을 없애기 때문에 가축들은 스스로 저항성을 키울 능력을 잃는다. '실시간 무료 생태서비스'를 받을 기회를 없애 버리는 대신에, 기업들은 약물을 투입하는 값비싼 사육방식으로 가축들을 지킨다. 대규모 사육장 밖, 기업의 대차대조표에서 벗어난 개체집단에서는 사망률이 높아지는 것 같은 부정적인 영향까지 모두 포함된 선택이 일어난다. 그 과정을 통해 진화적 이득을 거두기도 한다. 그러나 집약적 축산업에서는 진화의 이점이 차단된다. 그러므로 자연환경과 통합된 농업은 동물전염병을 통제하는 근본적인 방법일 뿐 아니라, 다음 분기 수익을 넘어 장기적으로 더 경제적인 방식이 될 수 있다. (257쪽)
우리의 미생물군 유전체, 면역 체계, 세포와 DNA는 결국 우리에게 기생하는 존재들이다. 다층적인 개입과 생태학적 회복력을 통해, 상품보다 먼저 사람을 보는 사회성을 통해, 병균들과의 '화해'를 통해 우리의 사회생태학적 터전을 더 깨끗하게 만들 수 있다. (274쪽)
우리는 자본이 주도하는 변화 속에 야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 과정에서 농업과 인간이 건강은 어떤 변화를 겪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 주는 '구조적 원헬스 Structural One Health' 접근을 제안한다. (296쪽)
이렇게 이 책은 구조적 원헬스를 주장한다. 그래야만 전세계적 감염병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그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이 표를 참고로 살펴보면 좋겠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1/1227/pimg_7744201133248192.jpg)
<롭 월러스, 팬데믹의 현재적 기원. 2020년. 30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