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을 읽으며 시 한편 한편이 독립되어 있지만, 시집 전체적으로 통일성이 없는 시들을 만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별 문제는 없었다. 시집을 하나의 유기체로 이해하기보다는 시 한편 한편을 유기체로 이해하고 감상하면 됐기 때문이다.

 

  그런 시들이 마음에 남아 시를 더 좋아하게 하기도 했는데, 이번 이원하 시집은 시 한편에서도 연과 연들이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야말로 감정의 과잉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마치 하룻밤 꿈 속에서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지만,그 일이 어떤 연관성도 지니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꿈에서 일어나는 사건 하나하나가 충격으로 다가와 어떤 꿈은 기억에 오래 남고, 어떤 꿈은 기억에서 사라져, 꿈을 꾸었다는 느낌만 남아 있게 되는데...

 

이원하 시집,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샀지만, 제목이 된 첫시를 읽으면서 어떤 통일성을 기대하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도대체, 이렇게 감정들을 나열해서 무엇을 전달하고자 할까?

 

사람들 감정이 하나로 정리될 수 없음은 명확하고, 그래서 정신분석학에서 무의식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세계가 엄청남을 알려주고 있지만, 적어도 시인은 무의식의 세계를 의식의 세계로 끌어올려주어야 하지 않나.

 

무의식을 그냥 무의식으로 내보내는 역할이 아니라 무의식을 의식으로 걸러 내보내는 역할, 시인이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이원하 시집에 실린 시들은 그렇지 않다.

 

어떤 의미를 전달하고자 할까? 아주 예민한 시인의 감성을 언어로 표현해 우리가 그런 감성을 이해하지 않더라도 그냥 느끼게 하는 걸까? 감성의 넘침. 그런 시들을 읽으면서 그 넘침에 우리들이 흠뻑 젖기를 바라나?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부를 이루는 낱말들은 한 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 낱말들을 합치면 '새싹눈물'이 된다.

 

새싹은 새롭게 시작하는 일이고, 눈물은 감정의 넘침이다. 그러니 이 시집은 전체가 감정의 넘침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제목이 된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가 마음에 와 닿는다.

 

제주 역시 동떨어진 섬 아닌가? 여기에 '혼자 살고'라고 했으니 외로움도 있겠고, 다른 사람을 향한 마음의 분출 또한 있을테고, '술은 약하'다고 했으니, 조금만 마셔도 자신의 감정이 흔들리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래, 이렇게 넘치는 감정은 모든 것에 자신의 감정을 투사할 수 있다.

 

어쩌면 이런 감정의 투사가 사람들을 부드럽게 할 수도 있다. 자신만이 존재하지 않고, 함께 존재해야 함을, 심지어 무생물에게서도 감정을 느끼게 되니 어찌 함부로 살 수 있겠는가?

 

이원하 시집을 읽으며 그런 감정들의 넘침을 생각하는데... 이 시를 자꾸 곱씹어보게 된다.

 

나무는 흔들릴 때마다 투명해진다

 

나무는 신처럼

하늘과 가깝고 수염도 자라고

늘 같은 자리에 머물지만

내 소원을 들어줄 리 없다

 

한순간도 내게

솔직해질 용기를 줄 리 없다

 

편애도 없다 편애도 없는 건

다행이기도 하고

불행이기도 하다

 

어쩔 수 없이 나에게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아침마다 손이 따뜻한 이유다

관심을 얻기 위한 온도다

 

온도의 숫자를 하나둘 올리다가

내 손가락이 몇 내가 접혔을 때쯤

손에 불이 날까

 

불은 모르고 손은 안다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소리는

손바닥에 있다는 사실을

 

손은 모르고

나는 안다

 

이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이원하,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문학동네. 2020년 1판 8쇄. 118-119쪽.

 

더 말을 할 필요가 없다. 그냥 감상만 하면 된다. 누구든 자신의 마음대로 이 시를 감상하면 되지 않겠는가. 나 역시 마찬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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