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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위해 정치를 하겠다고, 국민들을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대통령이 되기 위해 여러 말들을 쏟아내고 있는 요즘.
기가막힌 말들의 잔치. 이 말들이 실현이 되었다면, 공허한 울림만 남기지 않고 현실에 자리를 잡았다면 지금 우리가 두려움에 싸여 있지 않았을텐데.
사회적 재난을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시대, 이런 시대에 사람들은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중무장을 하고, 남들로부터 보호하려 장벽을 쌓는다.
함께라는 말, 더불어라는 말이 말로만 존재하고, 생활에서는 분리, 보호, 방어가 자리를 잡게 된다.
선진국에 들어섰다고 하지만, 선진국이 의미하는 바를 실제 생활에서 체감하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몇몇 사람들은 우린 선진국이다라고 즐길 수 있겠지만, 더더 많은 사람들은 선진국은 말로만 존재할 뿐. 하루 벌어 하루 먹기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다.
먼 미래를 계획하지 못하고, 직장에서 언제 해고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삶. 해고는 죽음이라고, 해고된 이후에 사회에서 삶을 유지하게 하기보다는 개인이 제 삶을 유지하게 만든 사회. 그런 사회에서는 온몸에 가시가 돋고 남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 할 뿐이다.
최승호 시집을 읽으며 자연을 파괴하는 사람들의 모습(부르도자 부르조아)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힘들게 하는 장면(늦게 도착해 본 광경)을 발견하기도 한다. 씁쓸한 마음이 든다.
그러다 '마을'이란 시에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본다. 지금 우리는 이렇게 고슴도치처럼 온몸에 가시를 달고 살고 있지 않은지.
마을
나비처럼 소풍 가고 싶다
나비처럼 소풍 가고 싶다
그렇게 시를 쓰는 아이와 평화로운 사람은 소풍을 가고
큰 공을 굴리는 운동회 날
코방아를 찧고 다시 뛰어가는 아이에게
평화로운 사람은 박수 갈채를 보낼 것이다
산사태는 왜 한밤중에
골짜기 집들을 뭉개버리는가
곰은 왜 마을을 습격하고
산불은 왜 마을 가까운 산들까지 번져오는가
한밤중에 횃불을 드는 마을의 소리
한밤중에 웅성거리는 마을의 소리
우리들은 고슴도치의 마을에서
온몸에 가시바늘을 키운다
평화로운 사람은 문을 걸고
잠속에서도 곰에게 쫓길 것이다
우리들은 고슴도치의 집에서
돌담을 높이 쌓는다
평화로운 사람은 한숨을 쉬고
문풍지 우는 긴 겨울 밤엔 장자를 읽으리라
최승호, 고슴도치의 마을, 문학과지성사. 2011년 재판 6쇄. 81-82쪽
평화로운 사람이 '문을 걸고', 평화로운 사람은 '한숨을 쉬고'... 과연 평화로운가? 이 평화는 언제 위협을 당할지 모르는 불안함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문을 걸고, 돌담을 높이 쌓고, 한숨을 쉴 수밖에 없다.
이때 평화로운 사람은 힘이 없어 다른 사람을 괴롭힐 수 없는 존재다. 다른 존재와 함께 살아가야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또는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힘든 상황에 처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이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행동할 수밖에 없다.
정말로 평화로운 사람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달릴 수 있게 하는 사회, 문을 걸지 않고, 돌담을 높이 쌓지 않고 한숨을 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 그런 마을.
말로만 그런 사회를 만들겠다고 하지 말고, 실제로 그런 사회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 그런 사람들이 정치인으로 인정받는 사회였으면 하는 생각.
최승호 시집 '고슴도치의 마을'을 읽으면서 한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