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질긴 땅 그들의 노동에 1
존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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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의 소설이다. 여러 단편이 묶여 있는데, 배경은 농촌이고, 인물들은 농민들이다. 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 벗어나지 못하는 이라는 말보다는 벗어나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

 

땅은 움직이지 않지만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땅을 통해 생명은 지속된다. 농민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이 땅을 떠나는 순간, 그들은 농민이 되지 않는다. 뿌리 뽑힌 삶을 살아가게 된다. 땅에서 벗어난 농민. 버거의 이 소설에서 그들은 나오지 않는다.

 

이 소설집에서 인물들은 대도시의 파리로 가더라도 다시 돌아온다. 이들이 살아야 할 장소는 땅을 일구며 사는 곳이다. 땅과 같이, 다른 동물들과 같이 이들은 살고 죽는다. 죽음도 그들은 거부하지 않는다.

 

지금 죽음을 앞두고 대부분 병원으로 가는 도회지의 삶과는 다르게 이 소설집의 인물들은 죽음을 자신에게 친숙한 곳에서 맞이하고 싶어한다. 죽음이 자신이 알고 있는 곳으로 오게 하고 싶다고. 그리고 그들은 죽음을 거부하지 않고 죽음도 삶의 일부임을 인정하고 살아간다.

 

더 많은 말이 필요없다. 땅과 함께 사는 삶은 자연의 일부인 삶이다. 돈을 앞세우는 삶이 아니라 생존을 우선하는 삶이다. 이들은 살아갈 뿐이다. 그렇다고 비도덕적이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그들의 삶은 그 자체라고 봐야 한다.

 

자신이 기르는 가축을 도살하고 생명을 유지하듯이 그렇게 이들은 살아갈 뿐이다. 여기에 어떤 수사는 필요없다.

 

이런 삶이 가장 잘 드러난 소설이 '루시 카브롤의 세 가지 삶', '루시 카브롤의 두 번째 삶', '루시 카브롤의 세 번째 삶'에 잘 나타나 있다.

 

삶 자체로 살아가는 사람, 루시 카브롤, 소설에서는 별명으로 더 불리는데, 코카드리유라고 한다. 그녀의 삶을 보면 동생들에 의해 쫓겨나 살지만 자연 속에서 자신의 삶을 계속 유지해 간다. 그러고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간다.

 

루시는 태어나면서부터 남들보다 작았다. 어른이 되어서도 작은 키를 지니고 있다. 이는 땅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 농민(통칭 농민이라고 한다)들의 삶이 점점 어려워지고 사회에서 비중이 더 작아지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루시는 일을 잘하고 열심히 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당한다. 그리고 동생들에 의해 쫓겨난다. 쫓겨나지만 땅과 더불어 계속 살아간다. 땅에서 나는 것들이 루시를 계속 살아가게 한다. 하지만 루시가 땅을 떠나려 할 때, 결혼을 해서 다른 삶을 살려고 할 때 더이상 루시의 삶은 없다.

 

그런 삶을 위해서 루시는 돈을 모아놓지만, 돈은 도시의 속성, 자본의 속성이고, 땅과 유리된 삶을 의미한다. 그러니 더이상 루시는 살아갈 수 없다. 다른 사람에 의해 살해당하는데, 이는 농민들이 도시화, 산업화로 인해 더이상 전통적인 삶을 살아가기 힘든 상황을 의미한다.

 

하지만 소설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루시의 세 번째 삶에서 환상적인, 귀신이 된 사람들이 등장해 집을 짓는 장면이 나온다. 이들은 이제 현실에서 살아갈 수는 없지만, 이들의 전통적인 삶은 환상 속에서 계속된다.

 

이렇게 존 버거의 '끈질긴 땅'은 땅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잘 드러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만큼 존 버거의 소설은 땅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모습을 소설 속에서 발견할 수 있고, 그 모습이 지금은 많이 낯설지만 원초적인 우리들 삶이었음을 생각하게 한다.

 

[그들의 노동에]라는 제목으로 3부작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라고 하는데, 이제 2,3부가 남았다. 2,3부 역시 땅과 함께 살아가는 땅과 떨어질 수 없는 사람들 이야기를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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