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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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여운이 남는다. 다 읽고 나서 책장을 덮는 순간, 무언가가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머리 속에 여러 생각들이 남아 있게 된다. 그리고 다른 작가, 특히 어슐러 르귄과 카프카가 생각난다. 생뚱맞게 왜 카프카?


최선을 다해 살았지만 어느 순간 사회에서 버려지는 사람, 세상이 변했다고, 이익이 남지 않는다고 이미 있던 관계들을 무시해버리는 사회. 그런 사회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소설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다.


우리는 당연히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 그래서 다른 세계로 갈 때 너무도 오랜 세월이 걸린다. 서양의 유토피아는 좀 다르지만, 우리 동양에서 무릉도원은 시간이 다르게 흘러간다. 무릉도원에서 며칠 보내고 오면 자신이 살던 세상에서는 몇 세대가 흘러가고 만다.


그래서 다시는 무릉도원을 찾아갈 수 없다. 그곳은 그곳으로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과학기술이 발달해서 머나먼 우주에 인간이 살 수 있는 행성을 마련했다면? 그곳으로 이주해서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그곳까지 가는 데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면? 우주의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더 빠르고 더 값싼 방법이 발견된다면?


지금까지 해왔던 방법은 폐기되고, 그곳에 가는 길이 없을 때는 가차없이 그 노선을 가차없이 폐기하고 말 것이다. 마치 궁벽한 마을에 수익이 나지 않는다고 교통편을 없애는 일과 같이.


그렇다고 가지 않을까? 그곳에 가족이 있다면? 지금 속도로 빛의 속도로 가도 만날까 말까 한데,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그래도 그곳으로 가려고 할까?


당연히 가려고 한다. 얼마가 걸리든 가지 못하든 상관없다. 그곳으로 가야만 한다. 소설에서 안나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가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182쪽)


그렇다. 루카치가 창공의 별을 보고 길을 찾고 떠날 수 있던 시대는 아름다웠다고 했듯이, 비용과 효율을 넘어서 자신이 가야 할 곳을 알고 가는 이의 모습. 안나에게서 그런 아름다운 모습을 발견하지만, 이윤 때문에 버려지는 모습에서 카프카의 '변신'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결국 사회의 효용가치가 변하면 사람을 대하는 방법이 달라지고 있는데, 그것에 순응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려는 사람, 그레고리 잠자는 죽음에 이르렀지만, 이 소설의 안나는 죽을지라도 그곳을 향해 가고자 하고, 그것을 실행한다. 카프카보다 한 발 더 나아갔다는, 이제 우리는 효용을 위해서 사람을 헌신짝 버리듯 버리는 사회에서 벗어나야 함을 안나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단 생각이 든다.


사람은 효용만으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고,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스스로 결정하는 존재임을 이 소설을 통해 알 수 있다. SF소설이 바로 우리 현실을 빗대어 이야기한다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다. 


이 소설집 처음에 실린 작품인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는 르귄의 소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을 생각나게 한다. 도대체 유토피아란 무엇인가? 우리가 유토피아라고 여겼던 세상이 디스토피아일 수도 있다는 사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는 동전의 양면과 같이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다양한 모습이 공존하는 삶. 그런 사회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이고, 그런 사회의 모습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이다. 르귄의 소설과 함께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스펙트럼'이란 소설을 보면 낯선 존재를 만났을 때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외계인과 아직 조우하지 못했는데, 과연 우리는 외계인을 만났을 때 어떻게 만날까? 많은 영화와 소설에서 외계 생명체와 만나는 장면을 그렸는데, 거기에는 인간 중심의 사고가 작용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낯선 존재를 우리의 사고틀로 판단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은 그 점에 의문을 제시한다.


우리가 문자언어로 생각을 정리하고 의사소통을 주로 하지만, 외계 생명체도 문자를 통해서 그런 활동을 하리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이 소설에서는 색채를 통해서 소통을 하는 외계 생명체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만큼 자신의 관점을 내려놓고, 그들을 온전히 이해하려는 자세로 다가가야 함을 생각하게 한다.


다른 소설들에서는 우리 현실을 생각하게 한다. 여성이 사회에서 겪는 어려움을 '관내분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라는 소설을 통해서 만나게 된다. SF소설이라는 특성으로 지금은 불가능한 장면이 많이 나오지만, 오히려 그 불가능성을 통해서 우리가 현실에서 차별받으며 고통받는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는지를 알게 된다.


SF소설이 지닌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먼 미래의 가상 현실을 이야기하는 듯하면서 결국은 현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따라서 SF소설이라고 해서 현실에서 벗어난 이야기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SF소설은 '지금-여기'의 삶을 돌아보고, 더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가상 공간으로 우리를 이끌고 간다. 하여 우리는 그 가상 공간에서 현실을 만나게 된다. 이런 점에서 김초엽의 소러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현실주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읽고 나서 깊은 여운을 주는 소설. 다른 작품들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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