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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겨울 2020 ㅣ 소설 보다
이미상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12월
평점 :
품절
<소설 보다>는 '이 계절의 소설' 선정작(문지문학상 후보작)을 묶은 단행본 시리즈로, 1년에 네 권씩 출간됩니다.' 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소설 보다> 봄, 여름, 가을, 겨울호가 있는 셈이고, 이들 소설 중에서 문지문학상이 나온다는 얘기일테다. 그렇다면 한 해 평론가들에게 인정받는 소설이 실린다는 얘기가 된다. 많은 소설이 나오는 중에 독자들에게 읽을 소설을 고를 때 하나의 기준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처음으로 읽어봤는데, 세 편의 소설이 실렸다. 이미상 '여자가 지하철 할 때', 임현 '거의 하나였던 두 세계', 전하영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전하영 소설은 2021젊은작가상수상작품집에도 실렸기 때문에 여기서 이야기하지는 않겠다. 아마도 이 소설이 평론가들에게 많은 주목을 받은 작품이었나 보다.
그 작품을 빼고 이야기를 하면 이미상이 쓴 소설은 제목부터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지하철 할 때'라니... 잘못 읽었나 싶어서 글자를 자세히 들여다 봤다. 분명 '탈 때'가 아니라 '할 때'다. 지하철을 한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 생각해 보는데, 답이 없다.
상황 설정도 현실적이지 않다. 얼굴리 쪼개지고, 그 얼굴들이 이야기를 한다. 그것도 본래 사람과 함께. 그래서 얼굴 둘과 주인공, 이렇게 셋이서 지하철을 탄다. 아니, 지하철을 한다. 한다는 말은 능동적인 행위를 나타낼 때 쓴다고 하면, 위험한 세상에 그냥 숨어 있지 않고 나와서 행동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얼굴이 둘로 쪼개진다는 의미, 여성이 하나의 얼굴로 살아가지 못하고, 여러 얼굴을 지니고 살아가는 현실을 나타낸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그만큼 여성에게 기대되는 역할이 많음을, 때와 장소에 따라 여성에게 다른 얼굴을 요구하고 있음을 이 소설에서 쪼개진 얼굴들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여러 얼굴을 지니고 살아야 하는 여성들의 형상화는 여성들이 도처에서 위협받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하나의 얼굴로는 살아남기 힘든 세상, 예기치 않은 폭력에 노출될 가능성이 많은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의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지하철에 내려서 "살았다!"라고 외칠 수밖에 없다. 고작 지하철을 탄 20분이 하루 종일 한 일이라는 사실. 그만큼 이동하는 시간에 어떤 위험을 겪을지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임현의 '거의 하나였던 두 세계'는 결국 하나가 될 수 없는 세계라는 뜻으로 읽힌다. 위계가 나뉘어 있다는 점에서는 학문을 하는 세계도 마찬가지지만, 여기서 학문을 함은 진리를 추구하는 일이고, 진리 추구는 둘이 아닌 하나를 향해 나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길에서 하나로 될 수 없음을,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둘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소설은 말하는 듯하다. 그래서 결코 하나일 수 없는 관계는 서로 조심을 해야 한다. 아무리 나와 비슷한 사람이라고 해도 내가 아니듯이, 그 사람에게 나인듯 말을 해서는 서로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그런 과정을 별것 아니라고 여기면서 지켜보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별것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에게 말할 때 '상처줄 것이 거의 분명한 말들인데도 상처주지 않으려고 나름 애쓰는'(99쪽) 소설 속 연재처럼 해야 한다.
이렇게 소설은 우리에게 다른 세상을 보여준다. 내가 살아가고 있지만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세상, 그 세상을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그럼으로써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게 한다.
<소설 보다> 겨울 2020에 실린 소설들, 세 편 모두 지금 우리 사회를 비춰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여성으로서 살아가기 힘든 세상, 타인을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타인에게 상처주는 말이나 행위들을 하고 있는, 또는 그런 모습을 모른 척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 이렇게 소설은 우리 사회의 거울이다. 거울을 들여다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