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한다고 나선 사람들이 상대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에 자신과 경쟁을 하는 상대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듯이 함부로 말을 한다. 함부로... 정말로 보통 사람들은 입에 담지 않을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귀를 씻어도 씻어도 그 말들은 귀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왜? 말들이 얼마나 더러운지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정치를 한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들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에 씻어서 밖으로 내보낼 틈도 없이 또다른 더러운 말들이 들어오니까.


  겨 묻은 개가 있나 싶을 정도로 똥 묻은 개들이 네 똥에서 냄새난다고 짖어대는 꼴이다. 표현이 개들에게 미안할 정도다. 아마, 개들은 네게서 사람 냄새난다 또는 사람처럼 욕한다, 사람처럼 행동한다 등을 욕으로 사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경쟁자이기 때문에 무조건 낮추고 비방해서는 안 된다. 경쟁자이기에 더욱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자신과 엇비슷하기 때문에 경쟁자가 되었으니, 거의 대등한 존재도 예의로 대하지 않으면 못하다고 여기는 사람을 대할 때는 예의를 생각도 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경쟁자에게 예의를 갖추어야 자신과 경쟁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예의를 갖출 수 있게 된다. 


사람이 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으면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없는데 이들은 마치 경선 과정이 전부인 양 칼이 되는 말들을 쏟아붓고 있다. 영화 [신기전]에서 화살이 로켓처럼 날아가듯, 칼이 된 말들이 상대를 향해 수없이 날아가고 있다. 여기에는 어떠한 예의도 없다. 


아주 작은 예의도 없이 그렇게 정치판이 굴러가는데, 그와 반대로 우리에게는 예의가 필요하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만이 아니라 모든 존재들과의 관계에서는 예의가 필요하다. 예의란 관계를 잘 맺게 해주는 기본 요소이기 때문이니.


그런 점에서 이 시집에 실린 문성해의 시... 요즘 정치인들이 꼭 읽어봤으면 하는 시다. 정치를 하려면 시인의 감성을 지녀야 하는데, 이들은 상대를 어떻게든 누르고자 하는 투사의 감성만 지니고 있으니... 그것도 미래는 보지도 않고 오직 현재, 내 앞에 있는 상대를 이겨내는 데만 관심이 있으니... 예의란 이들에게 승리하기 전까지는 꺼내지 않을 그런 판도라의 상자 속에 가둬두어야 할 존재일지도 모른다.


이런 사람들이 과연 이 시를 읽으며 자신의 행동, 자신들이 뱉어낸 말들에 대해서, 또 상대에 대해서 생각을 해볼까 하는 의문은 있지만, 그래도... 문해력이 많이 떨어졌다고 청소년들을 비판하지 말고 자신들부터 이 시를 읽고 의미를 깨우쳤으면 한다.

   

   조그만 예의

- 문성해


새벽에 깨어 찐 고구마를 먹으며 생각한다

이 빨갛고 뾰족한 끝이 먼 어둠을 뚫고 횡단한 드릴이었다고

그 끝에 그만이 켤 수 있는 오 촉의 등이 있다고

이 팍팍하고 하얀 살이

검은 흙을 밀어내며 일군 누군가의 평생 살림이었다고


이것을 캐낸 자리의 깊은 우묵함과

뻥 뚫린 가슴과

술렁거리며 그 자리로 흘러내릴 흙들도 생각한다


그리하여

이 대책 없이 땅만 파내려 가던 붉은 옹고집을

단숨에 불과 열로 익혀내는 건

어쩐지 좀 너무하다고


그래서 이것은

가슴을 퍽퍽 치고 먹어야 하는 게 조그만 예의라고 생각한다


허연 외, 북회귀선에서 온 소포 (2014 현대문학상수상시집, 현대문학 2013년. 65쪽)


고구마에게도 이런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그것이 '조그만 예의'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는데, 과연 우리는 다른 존재들에게 예의를 지키고 있는가.


예의란 상대를 존중하는 일. 그렇게 내가 먼저 상대를 존중해야 상대도 나를 존중하지 않겠는가. 관계에서 일방은 없다. 쌍방이 있을 뿐이다.


최근 정치판에서 난무하는 비방, 욕설, 상대를 깎아내리는 폄훼 등등을 보면서 이 시를 생각한다. 정말 우리 '조그만 예의'를 지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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