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실체가 잡히지 않았다.


  막연한 불안감. 촛불이 타버리고, 촛농만 흘러 촛불을 켰던 사람들 손에 뜨거움만 남겨 놓은 상태.


  어둠을 밝히려고 촛불을 켰는데, 촛농으로 내게 뜨거움만 남기고, 초를 놓아버리게 만든 시간들.


  그것이 바로 불안감이 생긴 원인이었다. 촛불로 밝히려던 많은 일들이 밝혀지지 않고 어둠 속에 묻혀 버렸다는 생각.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했는데, 쳇바퀴 위에서 열심히 달렸구나 하는 생각.


꼭 외부 요인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외부 요인이 강하게 다가오더라도 내부에서 고쳐나갈 의지가 있었다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 터다.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생각. 녹색평론179호를 읽으며 불안의 실체가 밝혀지기 시작했다. (최병성, 탄소중립,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


선진국으로 인정받았다고, 세계에 도움을 요청하는 나라에서 세계에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되었다고, 탄소중립으로 가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하는 나라가 되었다고 자화자찬하는 방송이 많았는데... 과연 그런가?


왜 도처에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숲을, 땅을 밀고 그 위에 고층건물들이 들어서고, 사람들은 여전히 아침에 나가 저녁에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많은데 '중대재해처벌법'조차 어정쩡하게 처리하고 있는지...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고 하면서 숲에 있는 나무를, 그것도 30년이 넘은 나무는 탄소 흡수율이 떨어지니 베어내고 어린 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하면서 베어내고 있으니...


재생에너지를 확보한다는 명목으로, 태양광, 풍력 발전을 위해 농토를 없애고, 산을 깎는 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으니, 녹색평론 이번호를 읽지 않았으면 그냥 막연하게 무언가 잘못되었다고만 생각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태양광을 농토에 만들지 않고 고속도로를 둘러싸고 있는 방음벽, 철도 방음벽 등에, 또 고층 건물 외벽에 설치하면 될텐데 그렇게 하지 않고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농촌, 산촌에 건설해서 송전탑과 송전선을 만들어 전력을 이동시키는 정책은 환경 파괴 정책이지 환경 보호 정책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지적.


나무로 문제를 국한시키더라도 이번 정부 정책에는 문제가 많다고 한다. 30년 이상된 나무가 탄소를 흡수하는 능력은 떨어질지 모르지만, 탄소를 저장하는 능력은 훨씬 뛰어나다고 하니 방송에서 다루었던 우리나라 숲에 30년 이상된 나무들이 많아서 탄소 흡수율이 떨어지니 그 나무들을 베어내고 어린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말이 잘못된 주장이라고 한다.


'30살까지는 나이를 세기 어려울 만큼 나이테가 간격이 아주 촘촘했다. 그런데 30살이 넘어가자 나이테 간격이 폭발적으로 넓어졌다. 나무가 성장한다는 것은 탄소를 흡수하는 과정이다. 나이테가 더 넓다는 것은 그만큼 더 많은 탄소를 흡수하여 몸에 저장한 것이다.' (최병성 글. 11쪽)


'나무 둥치는 나무가 대기 중의 탄소를 흡수하여 자기 몸에 저장한 것이다. 나무는 탄소덩어리 자체다.' (최병성 글. 13쪽)


이 글을 통해서 오래 된 나무를 함부로 베어내는 일이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탄소는 토양에도 많이 저장되기 때문에 나무를 베면서 토양을 훼손하는 일도 탄소중립에 역행하는 일이라고 한다.


말로만 환경, 생태, 탄소중립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자연과 공생하면서 우리 인류의 삶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점을 녹색평론 179호에서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탈핵으로 간다고 했으면서도 고준위핵폐기물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전 정권과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앞에 내세우는 말과 실제로 하는 행동이 다른, 전 정권과 차이가 나는 정책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촛불이 결국 우리들 손만 데게 하고 있는 상태. (황대권, 고준위핵폐기물 투쟁의 전말)


하지만 이런 일들에 실망만 할 수 없다. 회의가 들고 그냥 포기하기엔 들었던 촛불이 아깝다. 초는 자신을 태워 불을 밝혔는데, 그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래서 이번 호에서는 고 김종철 선생을 다루고 있다. 녹색평론을 만들고 우리들에게 생각의 전환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우리 시대의 어른. 돌아가신지 1년이 넘었는데... 그분의 주장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결코 포기해서는 안됨을 깨닫게 하고 있다.


오래 걸리더라도 가야할 길이 있다면 가야만 한다. 그 길을 걸어가야 함을 김종철 선생이 잘 보여주었고, 이번 호에서 다루고 있는 '김종철 선생 1주기를 맞으며'는 아직 우리에게 희망이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그래, 녹색평론이 여전히 발간되고 있음은 우리에게 아직도 희망이 있음을, 우리가 가야할 길이 있음을, 그렇게 그 길을 함께 가자고 결코 멈추지 말자는 독려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호에 실린 이문재의 문장을 마음에 새긴다.


'근대문명이 끝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이 끝이 끝나기 전에 (이 끝이 끝나는 순간 인류는 사라집니다), 끝을 시작으로 바꿔내야 합니다. 선생이 누차에 걸쳐 말했듯이 우리 안에 있는 '시의 마음'을 되찾는 것이 전환의 시작입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진리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시의 마음으로 우리가 다시 만날 때, 우리 '전환의 전위'는 춤을 추게 될 겁니다. 샤먼의 영혼과 땅의 노래(시)가 어우러지는 춤이 '공생공락의 가난한 사회'를 만들어내는 맨 앞이 될 것입니다.' (153쪽)


"끝이 시작되었다. 춤을 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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